'-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2)

‘우리들의 생존 이유’, ‘우리들의 아이들’ 다듬기

등록 2008.06.22 18:24수정 2008.06.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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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우리들의 생존 이유

 

.. 생명을 잃는다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도 필요하다면 생명을 버릴 만한 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 생명의 뜻이 없어지고 우리들의 생존 이유가 소멸하는 것을 본다는 건 참을 수 없다 .. <우정과 연애와 결혼>(계명문화사,1964) 7쪽

 

‘필요(必要)하다면’은 ‘때에 따라서’로 다듬어 줍니다. ‘생명(生命)’은 ‘목숨’으로 고치고, “소멸(消滅)하는 것을”은 “사라지는 모습을”로 고치며, “본다는 건”은 “본다는 일은”이나 “본다는 노릇은”으로 고칩니다.

 

 ┌ 우리들의 생존 이유

 │

 │→ 우리들이 사는 까닭

 │→ 우리들이 살아가는 뜻

 │→ 우리들이 살아남은 까닭

 └ …

 

일본말로 된 책을 그대로 옮기면(직역을 한다면) 토씨 ‘-의’가 곳곳에 끼어듭니다. 1964년에 나온, 좋은 말을 모았다는 책은 거의 틀림없이 일본책을 옮겼을 테지요. 그래서 “생명의 뜻”이나 “우리들의 생존 이유”처럼 썼을 테고요. 어쩌면 일본책에서는 “我等の生存の理由”처럼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토씨 ‘-의’를 그나마 한 번만 썼다는 대목을 반가이 여겨야 할는지 모를 일입니다.

 

보기글에서 뒷 글월을 통째로 다듬어 봅니다. “그렇지만 이 목숨에 아무 뜻이 없게 되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까닭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릇은 참을 수 없다.”

 

 

ㄴ. 우리들의 아이들은

 

..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이들이 장차 부딪치게 될 상황은 이제 우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 <타르코프스키/김창우 옮김-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1997) 38쪽

 

“될 것인가”는 ‘될까’로 손질하고, ‘장차(將次)’는 ‘앞으로’로 손질합니다. ‘상황(狀況)’은 ‘일’로 다듬어 주고, “어떻게 행동(行動)하는가”는 “어떻게 하는가”로 다듬습니다. ‘좌우(左右)된다’는 ‘달라진다’나 ‘바뀐다’로 고쳐씁니다.

 

 ┌ 우리들의 아이들은

 │

 │→ 우리 아이들은

 │→ 우리네 아이들은

 │→ 우리 나라 아이들은

 │→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은

 └ …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우리 어른들일까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깊이깊이 헤아리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우리 어른들이 맞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우리 마음으로 살포시 껴안으면서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우리 어른들인가 아닌가 헷갈리곤 합니다.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들이기 앞서부터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우리 어른들은 참말 어른이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푸나무가 내뿜는 싱싱한 숨을 들이키며 따사로운 햇살을 듬뿍 쬐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 않는 우리 어른들은 참으로 어른이 맞는지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며 또래 동무를 사귀고 놀이동무를 만나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골방에서 참고서와 컴퓨터만 붙잡게 하는 어른들 매무새가 그야말로 어른으로서 할 노릇인가 싶어 슬픕니다.

 

 ┌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 우리 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까?

 └ …

 

아이들이 어떤 말을 쓰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말을 받아들이고 익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말로 자기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살찌우는가 굽어살펴야 합니다. 밥이 되는 말을 하는지, 바보가 되는 말을 하는지, 피와 살이 되는 말을 하는지, 엉터리가 되는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찬찬히 보듬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2 18:2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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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우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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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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