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책책방 한쪽에 쌓여 있는 책들. 꽂힌 책과 쌓인 책들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내 마음에 밥이 될 책을 고릅니다.
최종규
(2) 어떤 삶이 묻어나는 책인가헌책방 <숨어있는 책> 나들이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마음밥이 될 책을 만나고 싶어서 먼걸음을 합니다. 마음밥이 될 책은 하나가 될 수 있고 다섯이 될 수 있으며 열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스물이나 서른이 되기도 하여, 가방이 넘치거나 따로 끈으로 묶어서 날라야 하곤 합니다. 오늘은 어떤 책으로 굶주린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책시렁을 둘러봅니다.
<모리스 드리용/배성옥 옮김,최윤경 그림-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민음사,1991)라는 어린이책이 보입니다. 새로 옮겨진 판이 있고, 집에도 한 권 있습니다만, 살며시 집어듭니다. 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풀빛으로 싱싱한 사랑을 나누는 티쭈라는 아이가 나오는 프랑스 동화. 이웃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은, 우리와 견주어 어린이문학 역사나 문화가 깊고 넓어서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꾸준하게 나옵니다.
책 뒤쪽을 봅니다. "고려대학교의 김화영 선생님을 비롯한 길우경, 고인숙, 심민화 선생님이 최근에 프랑스에서 나온 어린이책 중에서 2년 동안 고르고, 검토하여 준비한 책 열 권 가운데 하나입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티쭈 이야기는 1권입니다.
문득, 번역책 고르는 데에 두 해를 썼다고 하는 만큼, 창작책을 뒷배하고 북돋우는 데에도 이렇게 여러 해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다양성이 살아 있으면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도움을 주든 도움을 안 주든. 또, 어른문학이건 어린이문학이건. 집에서 아이들한테 어느 한 가지 길로만 걸어가도록 다그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학입시로만 내몰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문학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똑같은 학교옷으로 틀에 박히게 하며 머리길이 닦달하고 옷차림 다그치면, 아이들 다양성이나 개성은 살아나기 힘듭니다. 말이 좋아 ‘용모단정’이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림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몸짓에 똑같은 일을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시간을 들여서 하라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대학교에도 농학과가 있으나, 농학과를 나온들 농사꾼 되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밥을 안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만,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모두 ‘농사일 가르치기’에서 손을 들었고, 농업중학교나 농업초등학교란 아예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농중과 농초만 없겠습니까마는, 우리 스스로 밥 주권을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면서 어떤 정책을 올바르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