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장날, 개장국

동대문 종합상가 먹자골목 보신탕집

등록 2008.06.20 15:19수정 2008.06.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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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말에 'the dog days of summer'라는 구절이 매우 더운 날을 뜻하기까지 하니, 더운 날에 혀 내밀고 헉헉거리기도 바쁜데 게슴츠레한 눈으로 힐끔거리는 눈초리까지 피하느라 이래저래 '개같은 날들'을 보내는 게 복날 개팔자인가 보다.


동대문 먹자골목 보신탕집.    보신탕, 사철탕으로 불리는 개장국.  보신탕집 특유 분위기가 있다. '난닝구'바람으로 먹거나 바지 걷어 올리고 먹는 모습, 음식될 동안 즐기시라고 군용담요와 화투는 필수다.
동대문 먹자골목 보신탕집. 보신탕, 사철탕으로 불리는 개장국. 보신탕집 특유 분위기가 있다. '난닝구'바람으로 먹거나 바지 걷어 올리고 먹는 모습, 음식될 동안 즐기시라고 군용담요와 화투는 필수다. 이덕은

복날은 아니지만 4명이 모여 보신탕을 먹자하니  ㅁ ㅁ ㅁ ㅁ  犬, 바로 器 아닌가? 동대문 종합상가 건너편 먹자골목 안에는 보신탕집 둘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하나는 추억의 장날 '개장국'이란 작은 휘장을, 또 하나는 보신 사이에 고무신을 그려놓은 집이다. 먹어 본 바로는 두 집 모두 비슷한 것 같다.

준비 끝.    양념장에 들깨, 생강, 참기름, 식초, 겨자 기호에 따라 후추와 소금을 넣고,,,
준비 끝. 양념장에 들깨, 생강, 참기름, 식초, 겨자 기호에 따라 후추와 소금을 넣고,,,이덕은


그러나 어찌 지들끼리만 먹을 수 있는가? 찢어 먹든 발라 먹든 여자들 손맛이 들어가야 제 맛나지. 그러니 맛있는 배받이와 껍질은 남정네가 먹고 아낙네들은 가마솥 걸어놓고 고기를 푸욱 익힌 다음 대파를 숭숭 썰어 된장 풀고 고춧가루 넣어 푹 골 정도로 끓여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끌벅적 가족과 이웃간에 멍석 깔고 차양치고 나눠 먹으면 '난닝구' 사이로 더운 바람만 들어와도 고마움을 느끼니 바로 이것이 개장국 먹는 맛이 아니겠는가?

건배!    짠-  건배를 한 후...  어! 한 사람 잔에는 거품이 이네.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친구를 위하여 칠성쏘주로.
건배! 짠- 건배를 한 후... 어! 한 사람 잔에는 거품이 이네.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친구를 위하여 칠성쏘주로. 이덕은

나는 원래 보신탕을 먹지 않았으나 그림과 클래식 기타를 잘 치는 친구의 걸찍한 꼬임에 넘어가 입에 대게 되었다. 대학 시절 농촌의료봉사를 가면 부식 공수는 하급생이 맡을 수밖에.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그 친구와 둘이서 읍내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려니, 기와집 대문 사이로 대청마루에 웬 사람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있는게 보인다. 배도 출출한 김에 무엇인가 보니 수육무침이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도 용기를 내어 먹어보니 장조림살 같은 육질이 먹을 만하다.

이래저래 둘이서 소주 두 병 까고 일어서 진료캠프로 돌아오니 난리가 났다. 늦은 것도 늦은 것이려니와 구멍 뚫은 박스에 넣어두었던 닭들이 사망을 해 버린 것이었다. 주눅이 들어버린 우리가 애처로웠던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랬던지 자초지종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개를 하나 잡아 연필 반 토막 만한 굵은 대파를 넣은 개장국을 끓여 주었는데 흑백TV에 나오는 배삼룡을 보며 낄낄대며 먹었던 추억이 새롭다.


    3인분을 시켜먹고 약간 모자란듯하여 1인분 더 시키니 덤까지 나온다.
3인분을 시켜먹고 약간 모자란듯하여 1인분 더 시키니 덤까지 나온다.이덕은

식당에 들어서니 자리가 없다. 선창가 술집을 연상시키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니 그림이 그럴 듯하다. 밥상에 번호 대신 붙은 화투짝이 그렇고, 옆자리에 허벅지를 걷어올린 채 먹고 있는 손님들이 그렇고 벽에 붙은 싸구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그렇고 비키니 입은 양조회사 달력이 그렇다.

마무리.    자아 이제는 우리가 볶아 먹어야 할 시간....
마무리. 자아 이제는 우리가 볶아 먹어야 할 시간.... 이덕은

"이거 중국에서 들어온거, 미친 개 아니야?"


친구가 슬쩍 꼰다.

"중국에서 들어 왔으면 차라리 미친 개가 없을 껄, 비싼 사료 먹이겠어? 잔밥을 먹이겠지."

양이 괜찮다. 3인분을 먹고 1인분을 추가하니 서비스로 야채 위에 족을 덤으로 얹어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신탕 #개장국 #동대문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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