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청구서예방 접종 항목과 진찰비, 보험 회사의 할인 금액이 표시
양영석
청구된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방접종 비용은 각각 ① DTP $38, ② MMR $62, ③ 소아마비 $40, ④ 수두 $108 였고, 의사의 몫으로 청구된 부분은 맨 위의 $139, $17, 그리고 $48 입니다. 한 번 병원 방문에 왜 진료비가 세 번이나 청구되는지에 대해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꺼번에 4대 접종을 한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험회사가 해준 것은 개인이 내야 할 몫인 디덕티블에서 조금 깎아준 것뿐이었습니다. ($9.71, $3.15, $15.79, $3.22, $22.19) 물론 보험회사에 지급 책임이 없으니, 평상시보다 덜 깎았더군요. 결국 처음 방문 당시 $30와 청구서의 $367.94를 합한 $397.94를 4대의 예방 접종비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깎아줄 것을 부탁했으나 "사정은 딱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보험회사랑 상의하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어쩔 수 없어"나중에 오래 사신 분들로부터 보건소 비슷한 곳에서 종류에 관계없이 1건당 $10에 맞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나니 더 힘이 빠졌습니다.
이렇게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하게 된 데에는 확실히 알아보지 않은 제 책임이 큽니다. 그러나 글을 통해 아셨겠지만 미국의 민간의료보험 체계는 국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불편한 데다가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일원화된 운영 주체가 없으니, 회사마다 절차가 다르고, 우습게도 어떤 병에 걸릴지 미리 예상해 보험을 구입해야 합니다. 게다가 보험료의 소득별 차등 징수로 가져오는 소득 재분배 효과도 없습니다.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병원은 있습니다만, 시설이 낙후하고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며 많이 기다려야 하기에 꺼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에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고소득층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인기 있는 의사들은 영리병원을 설립해 높은 진료비를 요구하고, 보험사들은 소위 '상위 1%를 위한 보험상품'으로 부유층 대상의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 시장을 공략할 것입니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줄어들고, 경우에 따라 이전보다 보험료를 덜 낼 수도 있으니, 부유층으로서는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빠져 나간 만큼 서민 대상의 국가 의료 보험 재정은 열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시장 경제 입니까?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되면 고소득층이 가장 큰 혜택또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민간보험 도입이 초래할 혼란과 이에 대한 정부의 서민 보호 대책입니다. 제 경우처럼 엉뚱한 보험을 구입해서 이중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 안 생길까요?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 용어 투성이의 보험 약관을 노년층이나 저학력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국 병원의 경우 응급 환자는 보험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반드시 치료하거나 혹은 다른 병원을 소개하게끔 되어 있습니다만, 국내 병원에서 신분 확인이 되지 않거나 지급 능력이 없는 환자를 문전박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제 친형이 국내 대기업 S생명의 실손 보장형 질병보험에 들어 있습니다. 올해 초, 가족끼리 온천을 다녀온 후 만 3살의 조카딸이 '요로감염'이란 질병을 앓고 종합병원 2인실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약관 뒷면에 찾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여아의 비뇨기 계통은 보상하지 않는다'고 고지하였고, '일반 병실요금만 지급한다'면서 병실 비용 지급을 거부하였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일반실을 구하기 어려우니 일반실에 해당하는 비용이라도 보상해 달라고 하였으나 끝내 거부하였습니다.
민간회사에 국민 건강권 맡길 수 없어민간회사는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합니다. 통계학을 이용하여 감염 비율이 높은 질환을 보상 범위에서 제거하거나, 혹은 약관에 들어 있더라도 소송까지 불사하여 보험 가입자들을 괴롭히는 보험사들의 횡포를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하여 어렵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병원 자주 가야 할 사람은 보험회사에 사정해야 겨우 받아주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이 변화가 싫어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내 의료시스템은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3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이 치료 등으로 병원을 집중적으로 이용하였는데, 미국 병원비와의 차익이 비행기 값을 뽑고도 남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현 정부의 광범위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소중한 권리 행사를 포기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톡톡히 깨달았으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딴지일보와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http://blog.daum.net/serahabba)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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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도 들었는데, 예방접종 4방에 4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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