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
이정환
조선희(48) 한국영상자료원장은 '파격'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일찍이 후배 기자가 말했듯이 "영화판이라는 정글에서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며 살던" <씨네21> 창간편집장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행보부터 그러하다. 2006년 9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정글에 복귀하면서, 또 한 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도 '정글 기질'은 여전했다. 인터뷰에서 조 원장은 "국가적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긴장시킨다"고 했고, 영상자료원의 낮은 대중적 인지도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은 내가 풀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도 내비쳤다. 취임사를 통해 직원들에게는 대뜸 "유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파격'도 잊지 않았다.
어느덧 1년 8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서초동에서 상암동 DMC로 본부를 옮기면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필름보관고, 영화라이브러리, 시네마테크 그리고 영화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영화 아카이브(특정 장르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편집자 주)로서 기본 틀을 갖췄고, 장편영화 1천 편, 독립영화 7백 편을 디지털화하는 등 내용적으로도 진일보한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정글의 지배자'가 바뀌면서 '조선희 체제'도 최근 위기를 맞았었다. 이른바 '코드 기관장 적출', '좌파 문화권력 인사'에 대한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조선희 원장의 이름 또한 살생부 명단에 오르내렸던 것.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 통합설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사퇴 압력? "내가 벌여놓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 결심"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은 1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하도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깊이 생각해봤었지만, 최소한 내가 벌여 놓은 일은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향후 사퇴 압력이 있어도 굴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조 원장은 '실제 사퇴 압박을 느꼈냐'는 질문에 "어떤 단체에서는 퇴진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는 말로 사퇴 압박이 있었음을 시사했지만, "적어도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정부측 압박 움직임은 없었다"고 확대 해석을 차단했다. 하지만 조 원장은 '그럼 말끔히 정리된 상태로 봐도 되는가'란 질문에는 "그런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조 원장은 그동안 이른바 '예산 투쟁'에 상당한 힘을 기울였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상암동 DMC 사옥 이전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고, 디지털 아카이브와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 우리 고전영화에 대한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5월 영상자료원은 칸 국제영화제를 통해 김기영 감독의 '하녀' 복원판을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