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장깻잎조림 양념장은 멸치 한 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다진 파, 진간장,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이종찬
오늘 저녁에는 깻잎조림이나 만들까? 1960년대 중반. 나그네가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때였던가. 그해 오뉴월 보릿고개, 우리 마을에서는 '한 집 건너 굶는다' 할 정도로 하루 끼니 한 끼조차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집이 수두룩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에서 굶는 아이들을 위해 운동장 느티나무 그늘 아래 커다란 무쇠 솥단지를 걸어놓고 강냉이죽을 끓여 나눠 주었겠는가.
사실, 그때 나그네의 집도 먹을거리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상 밥상 위에는 쌀알 서너 개 섞인 시커먼 보리밥에 김치, 상추, 풋고추, 된장 정도가 모두였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 그 누구도 밥타령이나 반찬타령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다.
"그나마 너거들은 부모 잘 만나 이 험한 보릿고개에도 보리밥이나마 꼬박꼬박 챙겨먹고 다니니 복 받고 사는 줄이나 알아라." "……""나도 안다. 한창 크는 나이에 묵고(먹고) 싶은 것이 울매나(얼마나) 많것노. 오늘 저녁에는 깻잎조림이나 만들어 보까? 지금 앞산가새 밭에 들깻잎이 한창 아이가." "깻잎조림예에? 깻잎은 쌈 싸 묵는 기 아입니꺼?""입맛 없고 돈 없을 때는 깻잎조림 그기 최곤기라. 오죽하모 너거 할배가 깻잎조림을 보고 밥도둑이라 했것나."
어머니께서 깻잎조림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앞산가새(앞산 비탈) 밭에서 갓 따온 깻잎을 우물물에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담았다. 그리고 소쿠리에 담긴 깻잎의 물기가 빠지는 동안 밥그릇에 잔멸치 한 줌, 집 간장, 고춧가루, 물엿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 뒤 깻잎 사이사이에 조금씩 끼얹은 뒤 냄비에 폭 삶아내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