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을 읽는 눈이 밝아지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등록 2008.06.12 16:35수정 2008.06.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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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프랑스 라코스 동굴벽화이다. 1만5천년에서 1만7천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붉고 노란 황토와 동물의 기름 섞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라코스 동굴벽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들어가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2000년이 넘는 미술사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주요한 양식만 한정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선택된 양식들은 각각에 대해서 구체적인 조형의 원리 및 그 바탕에 깔린 예술의 의지까지 드러내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먼저 미술사학에서 널리 알려진 논문이나 저서를 선택하여, 그것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형식으로 미술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런 연유로 이 책은 미술의 근본 요소인 형태와 색채로 출발하여 투시법, 형식과 내용, 미술 비평, 반복되는 고전주의 예술에서 모더니즘까지 시간과 선형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덕분에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이도, 깊이 있는 미술지식에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장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서'에서 알려준 흥미로운 사실들은 미술사로 빠져 들기에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이집트의 장인들은 조상의 제작에 '카논(Kanon)'을 사용했다. 그래서 실제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상의 비례는 표준에 따라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체의 길이는 자세와 각도, 그리고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나, 이런 미세한 변화량까지 카논으로 일일이 정해놓을 수 없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미의식에 따라 신체의 길이와 보폭의 길이 따위를 표준화하여 똑같이 그려냈다.

이집트인들이 이런 미의식을 갖는 이유는 현세가 아니라 내세를 그렸기 때문이다.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며 다양한 현실 세계를 초월해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획일적인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이집트는 전제군주의 나라라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고 창작의 자유마저 규제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이집트 벽화 속 인물의 얼굴과 하체는 측면, 상체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신체의 단축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고대 이집트엔 장인은 있되 예술가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이집트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리스 미술과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집트에 비해 그리스 예술은 자유롭다. 그리스시대도 '카논'에 의해 정해진 비례에 따라 조상이 만들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예술가 개개인의 재량에 맡겼다. 그리스 장인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예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그림들은 국가의 정치와 종교가 미술에 어떻게 미치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좋은 예였다. 이런 그림들, 일률적으로 정형화된 그림과 그리스의 역동적인 그림을 보면서 난 단 한 번도 왜 다를까? 라는 의심해 보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이것은 이집트 미술작품이야 이것은 그리스의 미술 작품이야, 라는 식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식 교육이지, 왜 둘이 다르지 라고는 의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우리식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속된 국가의 정치나 종교, 교육, 풍습 따위가 예술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고체계까지 얼마나 교묘하게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다보면 비례의 예와 같이 색과 빛, 원근법, 자연과 종교, 인간의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도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상반되거나 변화 된 그림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었지만, 색채 부분에서는 책에 실린 그림의 색이 명확하지 않아 작가의 설명을 확인할 없는 것도 있었다. 또 앞부분에서는 친절히 설명되었던 전문용어들이 뒤로 갈수로 초보자들은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설명 없이 진행되어 어렵게 느껴져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동안 미술작품을 너무 겉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미술사>을 읽으니, 미술 작품의 외형미와 역사의식을 읽어 낼 수 있는 눈이 조금은 밝아진듯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예스24,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예스24,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양미술사 1 - 미학의 눈으로 읽는 고전 예술의 세계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2008


#예술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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