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라진 옛길을 살린 '올레'에는 자연 그대로의 숨결이 살아있다. 여성위원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느릿느릿 간세다리로 걷고 있다.
김금숙
여성이 만든 섬에, 여성이 길을 내고, 그 길을 여성이 걸었다. 아름다운 우연이다. 천혜의 땅 제주도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설문대라는 할망이 망망대해 가운데 만든 섬이다. 내 고향 제주도에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걷는 길'을 만들고자 소망한 서명숙(전 <시사저널>·<오마이뉴스> 편집장)씨는 작년 여름 제주의 사라진 옛길을 찾아 '올레' 길을 냈다.
그리고 5월 30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여성위원 20여 명은 느릿느릿 간세다리(게으름뱅이)가 되어 올레를 걸었다. 넉넉한 엄마의 품 제주의 젖줄 따라 몸을 길게 뉘였다. 아이처럼 초롱초롱 세상을 둘러보고 멋진 풍광 배불리 들이켰다. 꿈틀대는 흙길을 밟으며 자연, 사람, 일, 사랑 등 그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논했다.
'아득한 신화에서 지극한 현실'로 이어지는 여성의 초월적 연대, '평화·생태·노동'의 공생을 도모하는 진보적 여행. 제주는 그들을 반겼고, 그들은 제주에 반했다.
한라에서 광화문까지 '미친 쇠고기 수입 반대'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대평 포구다. 소설에나 나옴직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관광객도 매표소도 상점도 없다. 달력 그림도 아니다. 이른바 제주도의 '생얼'이다. 세계자연유산의 맨얼굴을 목도한 그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제주도는 최소한 한 번씩 다녀갔지만 '립스틱 짙게 바른' 제주도만 봐왔으니.
일행은 먼저 바다를 등지고 관광 사진 대열로 섰다. 김금숙 사무금융연맹 여성국장은 현수막을 펼쳤다.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 이번 일정이 아니었으면 도심에서 촛불 밝혔을 터. 아쉬운 대로 원정 시위에 나선다. 한라에서 광화문까지. '고시철회 전면재협상'의 함성을 실어 보낸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