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카메라 렌즈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유

[나의 백인보 ①] 민중사 기록사진의 대가 박용수 선생

등록 2008.06.13 09:29수정 2008.06.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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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카메라 렌즈를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렌즈는 EF 28-70mm 1:2.8이다. 시중 가격으로 치면 이 렌즈보다 훨씬 더 비싸고 성능 좋은 렌즈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나는 내 카메라 렌즈가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렌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렌즈를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때 나는 청계피복노조사인 <청계 내 청춘>(돌베개) 출판을 앞두고, 그 책에 실을 사진사용을 허락받기 위해 박용수 선생을 찾아갔다.

박용수 선생님은 통의동 골목에 '한글문화연구소' 간판이 걸린 매우 작은 사무실에 계셨다. 1990년대 이후 처음 만난 선생님은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잡은 손을 한동안 놓지 않으셨다.

인사를 드린 나는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렸다. 선생이 1988년 말쯤에 펴낸 사진집 <민중의 길>을 펼치면서 거기에 게재된 사진 중 청계피복노조에 관한 사진을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은 흔쾌히 허락하면서 "이것은 너희들이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생님은 중학교 4학년 때 장티푸스를 앓은 뒤 청력을 잃으셔서 발음이 어눌하시다. 그래서 필담을 섞어가며 말씀하셨는데, 그 중 "이것은 너희들이 주인이다"라는 말씀만큼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즉 이 사진의 주인이 너희들이기 때문에 저작권이니 뭐니 따질 게 뭐 있느냐는 것과 "역사의 주인은 바로 민중이다"라는 뜻이다. 선생의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박 선생님은 책 속의 사진 한 컷 한 컷을 짚으면서 그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상황을 말씀해 주셨다. 모처럼 함께 사진을 보며 우리는 옛 생각에 젖기도 하고,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도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하던 중 배낭에서 수첩을 꺼내는데, 이때 배낭 속에 함께 들어 있던 카메라를 선생님이 보았다. 내가 머쓱해서 "선생님 저 요즘 사진 배우는 중이에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내 카메라를 보시며 "아, 이게 뭐야. 카메라가 품위가 있지. 렌즈 좀 좋은 걸로 가지고 다니지 가만있어봐" 하시더니 잠깐 다른 방으로 갔다가 커다란 렌즈를 들고 오시는 것이다.

"이걸 끼워서 가지고 다녀라, 내가 선물로 줄 테니."

나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괜찮아 나는 여러 개 있어. 그동안 카메라 빼앗기는 것에 포한이 맺혀 여러 개 가지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

 박용수선생이 쓰던 렌즈
박용수선생이 쓰던 렌즈민종덕

박용수 선생은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이 땅의 투쟁현장 어디에나 나타나셔서 카메라를 들고 시대를 기록하는 일을 하셨다. 당시 사진기자가 아니면서 카메라로 민주화투쟁 현장을 찍는 사람은 아마 선생님이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선생님의 카메라는 학생, 노동자, 농민, 빈민 그리고 재야 가릴 것 없이 이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두려움 없이 활약했다.

이 과정에서 박용수 선생은 수없이 경찰로부터 폭행, 연행, 카메라 압수, 필름 훼손, 심지어 구속 등을 당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을 사진이라는 강력한 언어로 시대를 기록했다.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언론자유가 봉쇄당한 시대적 상황에서 민주화투쟁을 정직하게 보도하고 기록하는 것에 목말라 할 때, 박용수 선생의 카메라 앵글 방향은 정의와 양심, 그리고 시대정신을 향했다. 어용신문기자가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시위대를 향해 앵글을 향할 때, 박용수 선생은 경찰의 잔인한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그쪽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경찰이 채증을 위해 시위대를 향해 앵글을 들이댈 때, 선생님은 독재의 심장을 향해 앵글을 곤두세웠다.

그 앵글은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민주화를 위해 외치는 사람들은 물론 분신, 투신 등의 방법으로 민중생존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절박한 순간과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서슴없이 기록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정체가 바로 선생님의 사진집 <민중의 길>이다. 당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던 우리는 선생님의 기록사진이 이후 얼마나 중요하고 큰 유산인가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1988년 말 발행 된 민중의 길
1988년 말 발행 된 민중의 길민종덕

이처럼 우리 민중사 기록사진의 선구자이면서 대가이신 박용수 선생님이 손수 쓰시던 렌즈를 내가 직접 받았으니, 나로서는 더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선생님의 그 혼이 담겨있는 렌즈라는 생각에 미치자 뭔가 무거운 사명감까지 생기게 되었다.

선생님은 연로(1934년생)하시기도 하고, 그동안 꾸준히 해 오시던 한글문화연구에 몰두하시기 위해 이제 사진 찍는 일은 별로 하지 않으시지만, 선생님의 그 정신은 어쩌면 오늘 촛불집회 현장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디지털카메라와 실시간 현장을 중계하는 동영상에 녹아들었는지 모른다.

나도 선생님이 선물해 준 그 렌즈를 둘러메고 연일 촛불집회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물론 초보자라서 결정적이고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포인트도 잘 몰라 이리저리 허겁지겁 쫓아다니기만 할지라도 지난날 선생님이 최루탄 속을 헤치며 얼마나 어렵게 현장을 누볐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지난 6월 5일 시청 앞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박용수 선생님은 그 특유의 인자하면서 사람 좋아하는 미소를 띄우시면서 내 카메라를 한번 쓱 만지면서 격려해 주셨다. 나는 칭찬받는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 콧노래를 부르며 촛불 속으로 달려갔었다.

박용수선생 6월 5일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박용수선생
박용수선생6월 5일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박용수선생민종덕

나는 6월 10일, 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역사적 순간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시청 주변 건물들을 돌아다녀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일에는 아침부터 집회장 주변을 혼자 다녀보았다. 그 결과 이날 저녁 7시경에 20층 건물 옥상, 난간도 없는 곳에서 촛불집회 광경을 찍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이 순간을 꼭 내 손으로 찍어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그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아쉬워서 가슴 칠 것만 같았다.

 6월 10일 춧불집회 장면
6월 10일 춧불집회 장면민종덕

다행히 그 순간을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물론 기술이나 기법 등 미숙한 점도 많고, 광각이 아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카메라로 2008년 6월 10일 민주주의의 찬란한 꽃을 찍었으니 가슴 뿌듯하다.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값진 박용수 선생님이 선물해 준 그 렌즈로 찍었으니 자랑스럽다. 

 6월 11일 새벽
6월 11일 새벽민종덕

 1989년에 출판 된 우리말 갈래사전
1989년에 출판 된 우리말 갈래사전민종덕

1934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남.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부산 김재문 선생 문하에서 사진수업을 했다. 이후 각종 공모전에서 특선, 준특선 입상. 개천예술제 사진분과 차장으로 일하면서 시가족동인, 흑기사동인으로 문학활동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창립 참여(지도위원), 민통련 보도실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나라사랑청년회 지도위원, 한국민주노동자연합 지도위원 등을 역임하고 <타임>, <라이프> 리포터로도 활동했다(이상 <민중의 길>에서 인용). 

저서로는 장시 <바람소리>와 <우리말갈래사전>, <겨레 말 용례 사전> 등이 있음. 현재는 한글문화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박용수 선생은 한글문화연구회 활동을 통해 나라끼리의 만남이 부쩍 늘어나면서 외래어에 밀려 급속도로 입지가 좁아들어가고 있는 우리말의 사용 빈도를 높여 겨레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자연어 검색 전자 갈래사전' 편찬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저서 <우리말갈래사전>은 국어대백과사전을 뒤져 토박이말 3만6000여 개를 강·바다·식물 등 주제별로 나눠서 89년에 출간했다. 그 갈래 사전이 빛나는 것은 가나다순이 아니라 생활, 문화, 사람 등 주제별로 정리해 어떤 분야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어에 목말라하는 작가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이 <우리말갈래사전>은 89년 북한을 방북한 문익환 목사가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하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인물 #박용수 #민중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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