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에선 찐한 육쪽 마늘 냄새가...

밤새 읽은 김용락의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등록 2008.06.16 15:29수정 2008.06.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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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과의 대화. 이날 나눈 대화는 고스란히 한 편의 시가 되었다. ⓒ 김용락


하루 한 번 골짜기로 들어오는 우체부는 어제도 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체부는 나무로 만들어진 우편함에 봉투 하나를 넣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이면 나는 어슬렁어슬렁 마당으로 나가 배달된 것을 꺼내온다.

어떤 날은 독촉고지서가 한 묶음이나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소설책 몇 권이 한꺼번에 오는 때도 있었다.


이번에 온 것은 시집. 대구에 사는 김용락 시인이 보낸 것이다. 올해 들어 김용락 시인을 만났던가. 정신 없이 지낸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봉투를 열어보니 막 찍어낸 듯한 따끈따끈한 시집이 나왔다.

권정생 선생과 나눈 대화가 시로 환생하다

표제가 재미있다.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라니. 조탑동이면 작년에 어린이 세상으로 영원히 떠난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께서 살던 마을이다. 시집을 펴들고 한 편을 읽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 김용락 시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일부

권정생 선생은 다음 날 일찍 윤석중 선생이 놓고 간 상패와 상금을 다시 부쳤다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정호경 신부가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생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쓰면 될 텐데" 하고 아쉬워 했단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같은 유언장 "인세는 어린이들에게"

시에 등장하는 정호경 신부는 봉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신부님이다. 권정생 선생은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쓴 유언장에다 정호경 신부의 이름을 떡 하니 올려 놓았다. 유언장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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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 문예미학사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 이 사람은 술은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 세번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 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정호경 신부의 독촉에 마지 못해 작성한 유언장이다. 권정생 선생은 70평생을 홀로 살았다. 그래서일까. 선생은 다시 태어나면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은 살아 생전 그 나이쯤 만난 어느 아가씨에게 벌벌 떨며 한 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 듯 싶다.

다시 환생하겠다는 선생은 '얼간이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도 할 지 모른다'며 그렇다면 환생은 하지 않겠다고도 한다. 지금 상황에서 선생의 환생을 기대하는 것은 꿈인지도 모르겠다.

고인이 된 분들과의 인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한 편의 시를 읽고 시집을 접었다. 낮 시간에 얼렁뚱땅 읽어 치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나는 시집을 자주 힐금거리며 읽고 싶은 유혹을 견뎌냈다. 밤이 깊어 졌을 때 나는 모든 소음마저 잠재운 후에 배를 깔고 시집을 펼쳤다.

시집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문예미학사 펴냄)>는 김용락 시인이 권정생 선생집에서 얻어낸 동화 같은 시로 시작된다. 권정생 선생이 미쳐 발견하지 못한 동화를 김용락 시인이 씨줄과 날줄로 곱게 엮었다.

나도 언젠가 안동의 조탑동 5층 석탑을 보러 갔다가 권정생 선생집을 들른 적이 있었다. 선생의 작은 오두막은 만물을 창조해내는 우주와 다르지 않았다. 평생 홀몸으로 살아가면서 교회의 종지기로 살았던 권정생 선생. 김용락 시인도 선생의 오두막을 자주 들락거렸던 모양이었다.

노인 힐책하는 투로
"정치는 야심과 잔인성이 있어야 해, 너는 그게 없잖아"

40대 중년 사내 묵묵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다시 노인 왈
"정치와 전쟁은 악마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악마가 아니라면 할 수 있겠니? 김근태 같은 사람이 양심적이라 해도 정치에는 정적이라는 게 있으니 상대를 꺼꾸러뜨리지 않으면 자기가 죽잖아"

40대 사내 여전히 묵묵부답

또다시 노인 왈
"공부나 열심히 해라"
40대, 약간 못마땅하다는 투로
"제 나이 며칠 있으면 50인데 지금 공부는 무슨..."
60대 노인
"그래도 앞으로 20년은 더 할 수 있겠다"

- 김용락 시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4' 일부

대학교수인 김용락 시인이 17대 총선에 나갔다 낙선한 이후 권정생 선생과 나눈 대화가 한 편의 시로 만들어졌다. 선문답처럼 진행되는 시는 그 장소가 선생의 오두막이라는 데 있어 한층 신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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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정생 선생과 김용락 시인 선생의 오두막에서 고인과 함께 ⓒ 김용락


시인의 시에선 토종 마늘 냄새가 난다

스스로 마늘 팔아 대학 다니고, 마늘 팔아 교수가 되었다고 말하는 김용락 시인은 육쪽 마늘로 유명한 의성 출신이다. 그러나 마늘은 이제 돈이 되지 않았고 농민들은 밀려드는 신자유주의에 항거하기 위해 애써 키운 마늘밭을 갈아 엎었다. 그의 시에서 토종 마늘 냄새가 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마늘 팔아 대학 다닌 자여
마늘 팔아 아파트 사는 데 보탠 자여
마늘 팔아 외국 여행 다녀온 자여
마늘 팔아 기부금 내고 교수된 자여
마늘 팔아 혼수 장만한 자여
마늘 팔아 월부 고급 승용차 산 자여
마늘 팔아 다방에서 티켓 끊은 자여
지금 당신의 죄 없는 아비가 죽고 있다
무지한 트랙터 밑에서
냉혹한 신자유주의 아래서
교양으로 위장한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
- 김용락 시 '마늘을 갈아 엎다' 일부

시작 활동을 한지 25년 째 되는 김용락 시인. 생의 절반을 문학과 함께 살았다. 그가 본 세상은 모순과 대립 투성이였고, 그런 세상은 그의 시어가 되어 그가 만든 시집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누구보다 현장감이 있는 시인이다. 아니 어느 시인보다 세상을 깊이 꿰뚫어 본다. 그에게 글 감옥은 세상인 것이고, 그는 그런 글 감옥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살아 펄떡이는 시어를 건져 올린다. 그래서 김용락 시인의 시는 싱싱하다.

이하석 시인은 그런 김용락 시인을 두고 "김용락 같은, 지독·지극한 회의론자이면서도 낙관론자가 누군가의 삶에 대해 말할 때는 가슴을 모으고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고은 시인은 "용락의 시가 이런 뜻을 아무 기교 없이 고백하니 어찌 나 같은 저녁 가슴 울지 않을 수 있나, 김용락! 언제 소주 몇 병 하자꾸나" 라고 했다.

김용락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소주 몇 병을 비워내기엔 잠시잠간이다. 밤 시간 김용락 시인의 시집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도 꽤나 목이 탔다. 빈 냉장고엔 먹다 남은 소주도 없어 공연히 찬물만 두어 컵 원샷으로 들이켰다.

김용락 시인의 시어가 쏙쏙 들어오는 것을 두고 '같은 촌놈이라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시집에 들어 있는 김용락 시인의 시 중에는 현장에서 낭송한 시들이 많다. 폼 잡고 낭송하는 자리이기보다 집회나 추모 현장에 낭송한 시들이 많다.

표제로 사용한 시 같지 않은 시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김용락 시인은 정작 시 같은 시들을 묶었다. 시집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은 고 권정생 선생과 고 이오덕 선생, 고 박영근 시인, 고 임병호 시인, 지율 스님, 도종환, 배창환, 도법 스님 등등 많기도 하다. 시집 한 권으로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복이랴 싶다. 생각해보니 시집을 읽는 밤 사이 큰 복을 얻었다.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김용락 지음,
문예미학사, 2008


#김용락 #민중시인 #마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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