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6.12 09:38수정 2008.06.12 09:38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참석해 주세요"
전화벨이 울리더니 친절한 목소리의 여성이 참석을 종용한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아! 맞다. 나 동물실험윤리위원이지. 지난 2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가서 교육을 받고 그 자격을 얻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그런데 위치를 물으니 위원회의가 열리는 곳은 수원이라 너무 멀고(내가 사는 곳은 서울 강북), 내가 한창 책을 한 권 마감 중이라 영 참석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분에게 연락하면 어떻겠냐 했더니 가능한 사람이 없단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열려면 적어도 한 명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추천한 동물실험윤리위원이 참석해야 하니 회사로서도 다급한 일인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참석하기로 했다.
내가 교육을 받을 때 그래도 꽤 여러 분이 교육을 받으셨는데 모두들 시간을 내기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거주지 근처만 커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허영에 우선한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개정되어 올 초 발효된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제도이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란 동물실험에서의 생명윤리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실험에 한해 동물실험을 허가하는 제도이다.
물론 이 제도는 국내 동물단체의 요구도 있었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동물복지에 관한 부분이 강화되면서 FTA 등 국제협상의 의제로 논의되어 무역장벽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마련된 면이 클 것이다. 하지만 계기야 어쨌든 동물실험에 관한 제재 장치가 마련된 것은 동물애호가의 입장에서 쌍수 들어 반길 일이고 앞으로 동물보호단체들이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허영에 우선한다’고 결정하고 2009년까지 화장품 성분 동물 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2013년에는 동물실험을 통해 만든 화장품의 생산과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로서도 대비가 급박해진 것이다.
위의 경우는 작은 예로 실제로 OIE(국제수역사무국-최근 정말 지겹게 많이 들은 단체 이름^^;;;)는 2005년에 농장동물의 운송과 도축에 관한 복지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고, 실험동물에 관한 복지가이드라인도 마련중인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유럽연합과의 FTA에서 동물복지가 이슈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로서도 어쨌든 제도를 만들어 놓긴 놔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동물실험의 천국인 한국과 미국
내가 처음 동물실험문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 전까지는 나는 내가 쓰는 수 많은 일상용품들이 동물실험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샴푸, 화장품, 의약품, 세제 등이 동물들의 고통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고통스러웠다.
이 책에는 수 많은 동물실험의 사례가 나오는데 샴푸나 잉크 등의 물질이 토끼의 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자극을 주느냐를 실험하기 위해 얼굴만 내 놓고 움직일 수 없는 고정장치에 고정된 토끼들의 이야기가 그 중 덜 충격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고정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토끼가 괴로워할 때 눈을 긁거나 비비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토끼의 눈에 샴푸 등을 넣고 눈에 종기, 궤양, 출혈 등이 생기는지 조사한다. 실험 중 토끼는 비명을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지만 꼼짝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통증은 인간에 비해 훨씬 크다고 한다. 결국 실험용 토끼들은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다.
알고 나니 이런 잔인한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제품을 살 때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게 되었고 이런저런 책을 보며 공부를 하다가 결국 동물실험윤리위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동물실험을 없앨 수 없다면 줄이기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간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동물실험의 천국인 나라였으니까.
턱없이 부족한 동물보호단체 윤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