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 든 두 대학교수 법학과 김종서 교수(오른쪽)와 '우남관을 주시경관으로' 피켓을 들고 있는 이규봉 교수(가운데)
심규상
총장님, 법학과 교수 김종서입니다.
지난 6월 5일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이 캠퍼스에 세워졌습니다. 저는 이에 항의하고자 몇몇 교수님, 학생, 동문들과 함께 피켓시위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전국은 잘못된 쇠고기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민이 손모아 든 촛불은 이제 쇠고기를 넘어서 국민주권의 함성으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전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정권 퇴진까지 주장하며 민주주의의 함성을 높이고 있는 이 때, 배재대학교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독재자였던 이승만의 동상이, 바로 총장님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 전문에 명기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헌법교수로서,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견딜 수 없었고, 바로 그 심정을 "민주의 촛불과 독재자의 동상"이라는 글과 피켓시위라는 행동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총장님께서 동상제막식에서 "배재대학 설립에 대한 정부인가까지 마쳤는데 불행스럽게도 4.19 혁명이 일어나 늦게서야 부지를 팔아 이곳 대전에 대학 건물을 세우게 됐다"(<오마이뉴스> "'독재자'의 귀환, 이승만 동상 우뚝 서던 날")는 축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동상은 배재대학교 총동문회와 배재대학교 총학생회가 함께 건립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그것이 학교당국의, 아니 총장님의 의지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해서 저는 감히 총장님께 묻고자 합니다.
왜 이런 일을 저지르셨는지요? 민주주의의 함성 앞에서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건국대통령리승만박사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우남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동상 재건립을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하고 생각하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배재대학교를 그저 기념사업회나 우남연구회의 앞마당 쯤으로 생각하셨던 것인가요?
설마 총장님께서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 향후 배재대학교의 앞날에, 그 구성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 못하셨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치, 쇠고기협상을 졸속으로 타결시켜 놓고는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강변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처럼, 배재대학교 구성원과 대전 시민들이 왜 반대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셨거나 의도적으로 그 목소리를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만약에 알면서도 동상 건립을 강행하신 것이라면, 구성원과 시민들의 뜻에 반하는 일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꼴이 될 것이니, 총장님은 더 이상 배재대학교 구성원의 지지를 받는 리더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이런 사실을 모르고서 동상 건립을 감행하신 것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혼자서만 몰랐다는 점에서 총장님의 리더십과 대학운영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 알고서 했든 모르고서 했든 총장님이 감행한 독재자의 동상 건립은, 적어도 배재대학교 구성원에게는, 또는 함께 살아가는 대전 시민의 입장에서는, 또는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에 촛불을 밝혀 든 국민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님이 하실 수 있는 선택은 명확해집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두 달 가까이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함으로써 세살부터 여든까지 남녀노소 모든 시민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이명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거나,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제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식하여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지금 즉시 독재자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히 총장님께 요청드립니다.
독재자의 동상을 즉시 배재대학교에서 철거하십시오. 그리고 독재자 이승만의 호를 따서 지은 우남관이라는 건물의 명칭도 바로 잡으십시오. 그것만이 총장님 스스로를 영예롭게 하는 길이며, 배재대학교 구성원들과 대전시민의, 아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집회에 나선 모든 국민들의 자랑으로 남는 길이 될 것입니다.
총장님의 현명한 판단이 있으시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저는 다시 촛불을 밝히러 갑니다.
6·10 시민항쟁 21주년이 되는 날, 법학과 교수 김종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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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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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동상을 즉시 배재대에서 철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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