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에 찬 이명박의 선택은 박근혜?

박근혜 총리 만들기 보다 더 급한 건 국민과의 만남

등록 2008.06.10 08:27수정 2008.06.1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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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이 끊임없이 '말'로써 국민을 격화시켜 시위가 커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언론도 보도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끝까지 '나는 잘했으며 저들은 한미FTA 반대하는 좌파'라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지지 세력에 대한 염려가 더욱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그 잘못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인지를 간단히 이야기할 생각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공권력'을 이용해 타국의 수장과 만남을 가진 직후, 단 1명에 불과할 수 있을지라도 국민의 안전에 중대한 지장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음식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해 먹이려 했던 일이다. 대통령의 기본적인 임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임을 감안하면,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세력은 '이명박 탄핵'이나 '이명박 하야'라는 시위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체계인 헌법에 근거를 둔 목소리이기에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이후에도 '재협상'에 대한 끊임없는 오락가락 행보를 선보였고 중국이나 일본과의 외교에서 국민적 지탄을 받을 정도의 이해할 수 없는 외교행위를 일삼았다.

 

그뿐인가? '비폭력'을 고수하던 시위대를 향해 공권력이 과잉폭력진압을 선보임으로써 경찰조직 수장에 대한 임명권자로서도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 이 과잉폭력진압 역시 해외로 알려졌으니, 이명박 대통령의 행위는 종합적으로 판단해본다면 국가의 공무원으로서 오히려 국가의 국제적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가? 하나같이 심각한 잘못,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잘못만 골라서 저질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그러고도 시위 도중 일어난 일부의 과잉, 그나마도 의심스런 그 일부의 과잉만으로 '불법'이니 '폭력'이니 운운하면서 정당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 네버, 절대 아니다.

 

'박근혜 총리' 카드, "잘못했습니다"를 피하기 위한 정치공학

 

위의 한 마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자기애'와 '자기 확신'이다. '자기애'와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충만한 사람들은 쉽사리 "잘못했습니다"를 말하지 않는다. 민심 수습을 명분으로 '인사개편'이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한승수 총리의 사퇴 가능성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총리 임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어느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성사 여부를 떠나 좋은 정국수습 방안의 하나로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총리' 카드는,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본인의 위치를 지키는 가운데 내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위치와 입장이 변하지 않는 선에서 '친이'와 '친박'으로 분열된 범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을 일치단결시켜 정국의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카드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혹은 실천한다면 일단 여당부터 제대로 수습시켜 원내과반을 점한 범한나라당 세력으로써 혼란스러운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범한나라당 세력'만 묶을 수 있어도 한미FTA 비준이나 각종 공공부문 사유화를 마음껏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퇴하는 모양새같지만, '후퇴'하면서 진짜 목적은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무대를 확산시킬 수도 있다. 어차피 '한반도 대운하'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입장 표명 멘트' 정도를 제외하면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 의원들이 이명박 대통령 측과 가지는 정견의 차이는 크지 않다.

 

'공천 갈등'과 같은 권력투쟁에 따른 여파로 갈라섰을 뿐, 본질이 다른 집단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근혜'가 '의료보험 민영화'나 '학교 자율화 방안'에 반대한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 오히려, '사학법 반대'의 주동자였다.

 

문제는 '화학적 결합' 가능성

 

물론, 충돌의 가능성도 크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직을 제안해 박근혜 전 대표가 수락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가 원하는 위상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이해찬 전 총리와 같은 책임총리의 위상을 원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 측은, 이명박 대통령의 수하가 아닌 '국정의 동반자'의 위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 이명박 대통령의 '본질'과 충돌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깐마늘값 40% 인상에 분노'와 '전봇대 뽑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기엔 사소한 일에도 디테일한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저서 <사람 VS 사람>에서 묘사된 이명박 대통령의 심리를 살펴보자.

 

"과도한 자기 확신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에게 문제의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다.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교정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다. 마치 성공한 스타플레이어가 성공적인 코치가 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선수들이 잘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뛰겠다고 나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국민과의 대화'마저도 무기한 연기하는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당당한 자세를 견지한 대통령이었다면, 광화문으로 직접 나와 자신을 규탄하는 시민들과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문제의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으며 상대를 교정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박근혜 총리의 조합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공부문 사유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어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겠지만, 정견의 차이가 표면으로 노출된 '한반도 대운하'와 범여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대립을 나눌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이명박'이 '박근혜'를 교정하려고 든다면, '박근혜'는 과연 가만히 '교정'당할 수 있을까? 아니다. '박근혜'가 '박근혜의 방식'으로 권력투쟁에 나서 총선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눈으로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불신'만 커졌을 뿐이다.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는 그 '불신' 때문에 만들어진 당이다. 

 

박근혜로서는 '제로섬 게임'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박근혜 총리'설은 박근혜 전 대표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검증받을 수 있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총선 공천 과정에서 '피해자'의 이미지를 얻으면서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법비리 의혹을 체계적으로 거론한 장본인이면서도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유세함으로써, 한나라당이 말하는 '네거티브 공세 장본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오락가락 행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각종 정책이 물의를 일으킨 이후에는 끊임없는 '복당론'을 내세우면서, 누리꾼으로부터 '복당녀'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그런 판국에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번 그와 손을 잡으면 '복당녀'라는 별명으로 드러낸 누리꾼의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복당'을 포기해도 문제, 포기하지 않아도 문제. 결국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제로섬 게임'이다. 물론, 그에게는 국정 운영 경험이 없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일 가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더욱 눈에 띄는 가시밭길 투성이가 예고된 '총리'를 받아들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박근혜 총리'보다 더 급한 '국민과의 대화'

 

내 판단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쇄신'에 진지함을 담을 생각이라면, '박근혜 총리'와 같은 정치공학 냄새 물씬 나는 정치 쇼보다는 무기한 연기한 '국민과의 대화'에 성의를 더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 막말로, 새벽에 광화문으로 직접 나와 도로에 주저앉아 시민들의 분노를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쇼'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국민의 분노를 몸으로 느껴보길 권한다. 시위참가자들이 욕을 한다 해도 잠자코 듣기를 권한다. '쇼'에 불과할지라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와 큰절이라도 한 번 올려보라. 왜 '탄핵'과 '하야'라는 목소리가 나왔는지, 직접 느껴보라는 의미다. 시위대가 왜 전경버스를 끌고 흔들어대는 줄 아나? 바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라도 해보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 의지에조차도 '주사파'니 뭐니 하는 딱지를 붙이면서 끝까지 "나는 옳다"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다만, 남은 임기 내내 시위와 함께 '탄핵' 및 '하야'의 외침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만큼은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한창 건너 가장 깊은 곳에 왔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10 08:2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취임 100일 #촛불문화제 #이명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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