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옆 전시회 '안전합니다'...왜 난리들일까

아티스트 연미, 광우병 쇠고기 정국을 주제로 작품 전시

등록 2008.06.06 08:03수정 2008.06.0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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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가는 길목에서 게릴라전 '안전합니다'를 열고 있는 아티스트 연미
청와대 가는 길목에서 게릴라전 '안전합니다'를 열고 있는 아티스트 연미공숙영

회화와 설치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인 친구 연미가 전시회를 하고 있다. 장소는 종로구 삼청동 방면과 청와대 사이에 자리잡은 갤러리. 전시 시작일인 6월 3일에 작품 하나를 전시장 바깥 외벽에 달다가, 그 주변을 지키는 전경들과 경찰들이 몰려와서 난리가 났다. 아직 그 난리가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 모처(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의 연락을 받은 건물주가 갤러리 대표에게 외벽에 걸린 작품을 당장 철거해 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데….

그리하여 6월 5일,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그 난리인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워 전경들이 철통 같이 에워싼 청와대 바로 밑에서 열리고 있는 연미의 전시회에 구경을 갔다. 이름하여 게릴라전 '안전합니다'. 안전하다는데 왜, 도대체 왜 이 난리들일까.


 갤러리 외벽에 걸어놓은 연미의 작품.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
갤러리 외벽에 걸어놓은 연미의 작품.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 공숙영

게릴라전 '안전합니다'... 감히 청와대 앞에 '높으신 그 분'의 얼굴을?

 갤러리 옥상에서 내려다본 경찰차. 갤러리 건물을 가리고 있다.
갤러리 옥상에서 내려다본 경찰차. 갤러리 건물을 가리고 있다. 공숙영
문제의 진원지인 건물 벽 위로 높이 걸린 작품을 보는 순간 사태 파악이 확실히 되었다. 가까운 곳에 사시는 그분, 그 높은 분의 얼굴을 걸어 놓은 것이다. 다름 아닌 이 시국에. 등잔 밑이 어두울쏘냐. 연미의 인도를 받으며 외벽이 잘 보이는 길 위로 올라가려니 순찰하는 경찰로부터 어디 가느냐며 바로 제지가 들어온다. 가까스로 사진을 얼른 찍고 다시 갤러리 안으로 돌아왔다.

길 가는 행인들이 행여 외벽에 걸린 작품을 볼까봐 건물을 가리려는 건지, 전경차가 갤러리 건물이 면한 길 정면에 바짝 붙어 서 있다. 어차피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삼엄한 길목인데, 보아봤자 누가 얼마나 본다고. 갤러리 안에서 밖을 지켜보자니 가뭄에 콩 나듯 구름에 달 가듯 드물게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다 높이 걸린 작품을 보고는 흠칫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하는 광경이다.

연미가 잠깐 나간 사이, 몇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갤러리 안을 쭉 둘러보더니 급기야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어디서 오셨나고 묻자 답이 돌아오기를 구청에서 나왔단다. 돌아온 연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자, 전날에는 경찰서 정보과에서 다녀갔다고 입을 연다. 경찰서에서 무슨 일로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그냥 개인 자격으로 전시를 보러 온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란다. 진실로 멋진 경찰이다.

 갤러리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연미의 작품들. 소를 비롯하여 동물을 소재로 하였다.
갤러리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연미의 작품들. 소를 비롯하여 동물을 소재로 하였다. 공숙영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신문기사를 소재로 한 연미의 작품.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신문기사를 소재로 한 연미의 작품.공숙영

갤러리 둘러싼 전경차량들...구청공무원들 "전시 끝나자마자 철거하시오"


퇴장했다가 막이 바뀌고 다시 등장한 배우들처럼, 아까 그 구청 공무원들이 다시 대거 나타났다. 외벽에 건 작품을 현수막, 플래카드 같은 홍보물로 볼 경우 구청에 신고가 필요하고 신고 없이 건 홍보물은 구청 권한으로 철거할 수 있다고 한다. 창작자 연미가 그건 작품이지 홍보물이 아니라고 받아친다.

 촛불시위에 관한 신문기사를 소재로 한 연미의 작품.
촛불시위에 관한 신문기사를 소재로 한 연미의 작품. 공숙영
공무원들은 연미를 "작가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면서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 저희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지금 당장 철거하겠다는 것은 아니고(그들은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만약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갤러리 일정대로라면 이 전시는 이번 일요일(8일)에 끝나는 걸로 정해져 있으니까 전시가 끝나자마자 철수하는 게 확실한 걸로 알고 가겠다고 못박고는 다시 퇴장한다.


공무원들이 떠나고 나서, 연미와 나는 칼퇴근하는 공무원들처럼 갤러리를 나왔다. 청와대 앞길이 더 분주해졌다. 전경들이 저녁 도시락을  나눠받고 있었다.

평소에 작가적 욕심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던 연미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사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와서 내 작품을 보고 가면 좋겠다고. 응, 그러면 좋겠다.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화답했다. 많이 많이 이쪽으로 와서 연미의 작품을 보고 가면 정말 좋겠다고. 연미와 나는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곧 해가 지고 촛불이 뜰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연미의 게릴라전 “안전합니다” (2008.06.03-08) 갤러리 벨벳 인큐베이터의 전시소개:
http://www.velvet.or.kr/inc/Incubator/Exhibition/Entries/2008/6/3_Entry_1.html


* 6월 3일 전시오픈 당일의 풍경 - 연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rtyunmi/51622483


덧붙이는 글 * 연미의 게릴라전 “안전합니다” (2008.06.03-08) 갤러리 벨벳 인큐베이터의 전시소개:
http://www.velvet.or.kr/inc/Incubator/Exhibition/Entries/2008/6/3_Entry_1.html


* 6월 3일 전시오픈 당일의 풍경 - 연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rtyunmi/51622483
#연미 #게릴라전 #이명박 #청와대앞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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