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재협상 가능하다

소잡는 기술이 부족한 대통령, 소에게 잡힌 꼴

등록 2008.06.06 06:13수정 2008.06.0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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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때문에 정국이 소란하다. 소를 가벼이 본 대통령의 업보이다. 장자에 보면 소를 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 잡는 일로부터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 없어 현대적인 해설로 간략히 하자. 여기서 말하는 포정은 지금의 백정을 의미한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그 솜씨가 너무나 뛰어나 칭찬을 하자 포정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그것은 기술을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 후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는 저는 영감으로만 대할 뿐 눈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중략)... 그래서 소 몸통이 조직의 자연적인 이치를 따라서 뼈와 살이 붙어있는 틈을 칼로 젖혀 가르는 것이나, 뼈마디에 있는 큰 구멍에 칼을 집어넣어 가르는 것이나,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라 갈라냅니다...(중략)... 훌륭한 포정은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만을 베기 때문이며, 보통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니 그것은 뼈에 칼이 부딪쳐 칼날이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칼은 19년 동안이나 썼고, 또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그 칼날은 지금 막 새로 숫돌에 갈은 것 같습니다.”

문혜공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법을 배웠도다." (장자 내편 양생주 중간부분)]

포정의 소 잡는 칼 솜씨는 이미 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도 하찮아아 보이는 칼질을 통해서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고 도(道)의 궁극에 다다랐음을 말하고 있다. 주부가 부엌에서  매일 사용하는 칼, 재료에 따라 칼질의 방법이 달라지고, 같은 재료도 요리에 따라 달리 쓰는 칼질로부터 세상의 이치와 순리를 터득하고 나중에는 도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그까짓 칼질에서 무슨 도를 들먹거리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망치질에서 위대한 금속공예작품이 탄생하는 예술의 창작행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임에 틀림없다. 고기를 썰 때의 두께에 따라 맛이 달라짐은 물론이려니와 요리마다 칼질의 방법이 달라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포정은 칼질을 통하여 도를 터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기술이 아니라 도를 행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깨우치고자 하는 도를 포정은 칼질을 통하여 얻었다고 한다면 다시 한 번 칼질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지금 취임 100일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새삼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바로 포정의 이야기이다. 정치는 국민의 요구를 잘 알아야 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를 북돋아 주고, 어디를 잘라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부분은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인지, 경제의 흐름은 어떻게 흘러가고, 물꼬는 터야 할 때인지 아니면 막아야 할 때인지, 통화는 풀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긴축을 해야 할 것인지, 시장에 맡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야 할 것이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도록 할 것인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맥은 무엇이고, 영어 몰입교육의 부작용은 무엇인지, 운하를 사업적 발상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환경적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인지, 다시 말하면  쇠고기의 살은 어디에 있고 뼈는 어느 구석에 들어가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것에 맞게 칼질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이치에 맞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 국민의 입맛에 맞도록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다. 이명박 대통령은 포정이 말하는 훌륭한 요리사 정도도 아닌 모양이다. 물 흐르듯이 정책을 구사하면 헛된 힘이 들지 않고 살을 버리는 일도 없이 용도에 맞게 고기가 썰어지듯이 매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터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항간의 강부자 논란은 그러한 대통령의 성향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잘 나가던 북한과의 관계는 공연히 나서서 때리고 치고 파괴하더니, 미국에게는 잘 봐달라고 굽실거리다 보니 이러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  쇠고기 파국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정상회담을 서두르다보니  쇠고기 개방을 선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통령의 눈에는 국민의 건강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상회담에서 딱히 시급한 사안도 없었다. 미국과의 동맹을 과시하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그 반작용으로 우리의 거대 시장인 중국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이를 만회하느라 급기야 중국방문을 서두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왜 그렇게도 시급하였던 것인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취임 후 한 번도  쇠고기 협상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미국 정상회담에서 협상타결을 하였다고 하니 국민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문제는 재협상이 가능하다. 국민으로부터의 저항을 외면하거나 강제진압하려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국민을 등에 업으면 된다. 국민적 저항을 미국도 파악하고 있는 바이므로 이를 발판으로 삼아 재협상 요구를 할 수 있다.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저지른 일인 만큼 누구도 해결방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국에 국내 상황을 근거로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음을 요청하여야 한다. 물론 외교적 수치심을 모면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긴 하나 그 길밖에 없다. 선택은 대통령의 것이나 이는 불가피하다.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면 그것으로 끝날지 모르나 그 잘못된 협정은 두고두고 한국 국민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등에 업고 미국에 재협상 요구를 하느냐, 외교적 수치심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느냐 중대한 기로에 있다. 대통령은 미국의 눈치를 그만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국민을 섬긴다는 말잔치가 아니라 실제로 국민을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어려운 결정을 단행한 대통령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결정이 너무 늦는다면 국민적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이 될 것이고 결국은 똑같은 재협상을 하게 되더라도 존경의 대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아직 늦은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시일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언급해 둔다.

혹시라도 대통령이 말만 하면 따라오던 시절의 달콤한 권력행사를 권유하는 측근이 있다면 그는 필시 이명박 대통령을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려는 소인배일 것이다. 책임은 모두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그 밑에서 광영을 누리고자하는 아첨배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그러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공안정국으로 몰고 가 국민을 잠재우려는 시도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위대를 빨갱이라고 몰아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필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역도일 것이며, 그러한 사람이 곧 대한민국의 적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진정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포정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일찍이 함석헌 옹이 명동의 전진상기념관에서 장자 해설강의를 하실 때 들은 내용이다. 그때가 벌써 20년도 넘은 1983년도의 일이니 참으로 장자의 가르침처럼 허허롭기 그지없다. 무위자연으로 들어가신 함석헌 옹을 추모하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쇠고기 재협상 #광우병 #대통령 #포정 #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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