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예비군복을 입은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덕수궁 앞에서 경찰과 대치를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2008년 5월 31일. 대위 계급장이 붙은 전투복을 꺼내 입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청계광장으로 걸어가던 중 프레스 센터 앞에서 '출동'하고 있는 예비군들과 조우했다. 그들에게 내가 전투복을 입고 나온 이유를 말했다.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러 모인 '불순한 배후가 없는' 시민들을 보호하고, 다시 시민으로 돌아와야 할 '우리들의 전경'도 보호하기 위해 모인 예비군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프레스 센터 앞에서 '첫번째 임무'를 수행했다. 시민들 앞에 서서 '먼저 깨지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한 시간 남짓 서 있었다. '예비군'을 소리 지르며 환호하는 시민들의 함성을 들을 때마다 세포 깊숙이에 있는 나도 모르는 전율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허나 '예비군들은 자리를 비켜나라.', '당신들이 우리를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복만 입으면 다 사람이 그렇게 되느냐?', '당신들도 우리를 막는 전경과 똑같다'란 소리를 들을때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었다.
5월 31일 저녁 22시. 광화문에서 별다른 마찰이 없어 일단 대오 정연하게 철수해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많은 예비군들과 얘기를 나눴다. 누가 시켜서 참석한 예비군들은 없었다. 저멀리 울산, 전남 순천, 대전, 청주.. 우리가 방패로 나서 비폭펵으로 시민들과 우리 후배들을 모두 보호하자고 모인 예비군들이었다.
5월 31일 저녁 23시. 삼청동과 효자동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중인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들은 질서정연하게 현장으로 이동해 '비폭력 작전'을 준비중이었다. 시민들과 경찰들의 신경이 최고조로 달아 올랐을 때 그 틈을 비집고 우리들은 '비폭력 작전' 임무에 들어갔다.
나는 삼청동으로 진입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경복궁 담 쪽 끝부분으로 이동했다. 내 왼편엔 올해 전역했다는 예비군을 비롯해 3명의 예비군이 위치했다.
어렵사리 시민들과 경찰들을 뚫고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 방패 앞에 내 자신을 드러냈다. 눈 앞에는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들이 두려움과 짜증, 황당 등 여러 표정으로 '경찰'이 선명히 찍힌 방패 뒤에 서 있었다. 내 뒤로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또한 솔직히 너무 겁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쓴 전투모와 옷깃에 달린 '대위' 계급장의 힘을 빌렸다. 장교는 죽어도 '쪽팔리면' 안된다는 어느 선배의 말을 속으로 곱씹고, 시민들이 '여기 예비군엔 장교도 있다'며 환호해줬을 때, '저도 예비군인데 같이 하면 안될까요'라며 전투복을 입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시민의 얘기를 무기 삼아 당당히 가슴을 펴고 작전을 수행했다.
몇 차례 시민들이 거칠게 밀어붙였다. '비폭력 작전'을 수행중인 예비군들은 버텼다. 그 사이에서 방패와 시민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됐다. 진정 후 다시 완충 거리를 만들었을 때 내 눈 앞에 서있던 전경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선임'들과 '간부'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그 젊은 전경은 입모양으로만 '괜찮다'고 나에게 답을 했다. 서글펐다. 도대체 왜 우리가 서로 적이 되어야 하는지. 너무나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