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주머니 속에는 꿈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88] 갯괴불주머니

등록 2008.06.05 17:34수정 2008.06.05 17:3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갯괴불주머니 서귀포 앞바다의 절벽에서
갯괴불주머니서귀포 앞바다의 절벽에서김민수

갯괴불주머니는 바닷가 근처의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입니다. 바다는 늘 잔잔하지 않습니다. 태풍이 오기도 하고, 파도가 바람을 타고 넘어오기도 합니다. 간혹 태풍이 지나고 나면 바람을 타고 온 바닷물에 까맣게 타들어간 이파리를 달래며 서있는 해안가의 식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갯괴불주머니는 본래 고향이 그 곳이니 그럴 염려도 없고, 여느 괴불주머니보다도 강인한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와 친구처럼 지냅니다.

갯괴불주머니 숨은그림을 찾아보시겠어요?
갯괴불주머니숨은그림을 찾아보시겠어요?김민수

제주도 해안가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꽃이지만 이번에 만난 곳은 서귀포 바다의 절벽에서 만난 꽃이라 더 의미가 깊습니다. 바닷가의 모래밭이나 바위틈도 만만치 않은데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있으니 어쩌면 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꽃이 그러하듯 갯괴불주머니도 고난이 깊을수록 더 향기롭고, 더 진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고난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바다가 늘 잔잔할 수 없듯이 우리 삶에도 고난이 없을 수 없지요. 그러나 태풍이 있어 온 바다가 뒤집어지고 다시금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처럼 고난도 우리 삶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지요.

갯괴불주머니 함께 피어있어 더 아름다운 들꽃들
갯괴불주머니함께 피어있어 더 아름다운 들꽃들김민수

괴불주머니, 갯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이것이 제가 알고있는 괴불주머니의 종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주괴불주머니와 눈괴불주머니를 제일 좋아하지요.


맨 처음 꽃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때 자주괴불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식물도감을 통해서 이름을 익혀가던 때였는데 꽃모양이 영락없이 현호색입니다. 그래서 '현호색'이라고 했는데 어떤 분이 자주괴불주머니같다고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식물도감 몇 쪽을 참고하라고, 분명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두 해 정도지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지적을 해주신 분에게 미안합니다.

갯괴불주머니 바닷가에 피어나 더욱 강인해 보이는 갯괴불주머니
갯괴불주머니바닷가에 피어나 더욱 강인해 보이는 갯괴불주머니김민수

괴불주머니는 국어사전에 '어린 아이의 노리개'라고 되어있는데 순 우리말로는 '복주머니'라고 합니다. 꽃은 작아도 하나하나가 주머니를 닮았으니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나 봅니다. 그 작은 주머니마다 꿈이 하나씩 들어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이 하나씩만 들어있어도 꽃송이가 풍성하니 수많은 꿈들이 펼쳐질터이니까요.


저는 갯괴불주머니를 보면서, 작은 꽃 한송이마다 꿈이 가득한 것을 상상하면서 어두운 역사를 밝히기 위해 밝혀진 수많은 촛불들을 떠올렸습니다. 촛불 하나마다에 담겨있는 꿈, 어둠 속에서 곱게 피어난 꽃과도 같습니다. 그 꽃들이 하나 둘 모여 지금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 어두운 역사를 밝혀가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기의 사랑 갯괴불주머니에 의지해 사랑을 나누는 모기, 저 순간만큼은 숭고해 보인다.
모기의 사랑갯괴불주머니에 의지해 사랑을 나누는 모기, 저 순간만큼은 숭고해 보인다.김민수

갯괴불주머니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기를 만났습니다. 지난 밤 모기에게 원하지 않는 헌혈(?)을 하고, 아침에 잡아보니 그 놈의 몸에 내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밉고 성가신 놈이죠. 그런데 차마 이 순간만큼은 그들도 소중한 생명의 고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끔 미운놈도 예뻐보일 때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갯괴불주머니 아침이슬에 더욱 영롱한 갯괴불주머니
갯괴불주머니아침이슬에 더욱 영롱한 갯괴불주머니김민수

웬만하면 미운 것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아무리 예쁜 구석을 찾아보려고 해도 예쁜 구석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미운짓을 하거나 푼수짓을 해서 자기만 망신살이 뻗친다면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겠지만, 그 하는 짓으로 인해 다른 사람 혹은 내가 같이 피해를 봐야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겠죠.

사태파악을 하는가 싶으면 또 다른 말을 하고, 이제 정신이 들었나 싶으면 또 헛소리를 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약 올리려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는 아름다운 꿈과는 다른 욕심들만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꿈이 가득한 괴불주머니가 아니라 욕심과 아집만 가득한 괴물주머니같은 기형의 꽃을 피운 것 같습니다.

갯괴불주머니, 그와 눈맞춤을 한 날 아침의 햇살은 맑았습니다. 해무가 걷히면서 드러난 하늘과 바람이 잔잔하여 풀잎에 맺힌 이슬, 이제 충분하다며 풀들이 내어놓은 이슬(일액현상)이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꽃 안에는 소중한 꿈이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저 꽃안에 꿈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갯괴불주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