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월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취임 100일도 안돼 지지율이 20% 안팎으로 곤두박질쳤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요소 중의 하나가 '시장'이다. 이른바 '평등한 자들 간의 등가(等價)교환'으로 요약되는 시장거래가 경제활동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고대 노예제나 중세 봉건제와 확실히 구별되는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명제는 언제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시장거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 활동의 많은 부분이 기업 내부에서 이루어지는데, 기업 내부구성원들 간의 관계는 결코 '평등한 자들 간의 등가교환'이 아니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코즈(R.H. Coase)는, 기업은 지시⋅명령에 의한 권위주의적 조직으로서 시장거래의 대체물이라고 설명하였다. 다수의 주체들이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시장거래를 내부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데, 기업이 바로 이런 의미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기업(집단)이 경제활동의 핵심주체가 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권위주의적 조직이 평등한 시장거래를 대체하는 정도는 더욱 심화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대규모 기업의 권위주의적 조직에 익숙한 사람이다. 스스로 CEO 대통령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CEO와 부하직원의 관계와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성공한 CEO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든 국민들이 "니가 뭔데? 대통령이면 다야?"라고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실패한 대통령으로의 예약 티켓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허쉬만(A.O. Hirshman)에 따르면, '떠나는 것(exit)' 또는 '목소리를 내는 것(voice)'의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이 절을 떠나거나, 자기 마음에 들도록 절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조직문화는 특히나 권위주의적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구성원들이 기업을 떠나기도 어렵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일단 떠나는 전략은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떠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전략밖에 없지 않은가.
더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는 도가 텄다.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87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근현대사는 목소리를 내는 전략의 역사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초중등 학생들까지도 그 방법을 터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청계광장에서 '이명박 OUT'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 특히 10대 학생들이 이른바 신자유주의 반대 등의 이념적 구호를 외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히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매우 역설적이지만, 성공한 CEO로서의 기억은 빨리 지워야 한다. 국민은 결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부하직원이 아니라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는가? 듣지 않고서 어떻게 소통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듣기 훈련부터 다시 해야 한다.
경제관료들의 시대착오적 경제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