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촬영된 커티 사원의 희생자들군의 발포가 시위대를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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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들의 종교적인 정서를 건드린 것이 도화선물론 이번 시위에는 여러 구조적 원인이 있다. 독립 혹은 자치라는 정치적 요구 외에도 경제적 차별, 인권침해, 종교를 비롯한 언어와 문화의 탄압 등 여러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1951년 중국의 강점 이후 계속된 것들이다. 한족화된 소수의 티베트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이 받고있는 고통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크고 작은 저항은 지난 60년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처럼 대규모 항쟁이 벌어진 것은 60년 식민사를 통틀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리고 세 번 모두 대규모 항쟁으로 번진 데는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들의 종교적인 정서를 건드린 것이 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그 해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때 시위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은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암살하려고 달라이 라마를 초대했다고 믿은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지키자'며 맨 손으로 총칼에 맞선 것이었다. 이때 라싸에서만 12만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89년 라사에서 10만이 봉기하던 때도 이유는 매우 종교적인 데서 촉발하였다. 티베트 본토에 남아 티베트인들을 이끌던 10대 판첸 라마가 51세로 갑자기 서거하자, 중국이 그를 암살했다고 생각한 스님 수 십명이 평화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올해 사태 확산과 마찬가지로 전민중적인 항쟁으로 발전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사찰에 군대를 투입하여 엄청난 살인과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우연히 촬영된 중국군의 야만적인 진압 장면은 외부로 유출되어 세계인들의 공분을 샀다.
그렇다면, 티베트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시위대가 외치는 '프리티벳' 구호나 '설산사자기'만 보면 독립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 티베트인들 가운데 독립을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다. 본토의 티베트인들조차 대부분 달라이 라마의 '자치' 주장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위에서 티베트인들은 '인권 보호, 종교의 문화 자치'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 더. 시위 때마다 늘 앞서 등장하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결정된 2001년을 전후하여 티베트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난 수년간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단이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 들어가 중국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거듭 양보의 뜻을 천명했다. "나라 운영은 모두 중국이 맡아라. 대신 티베트인들이 종교와 문화 쪽만 자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독립 포기라는 일부의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종교활동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자치활동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였지만, 중국은 결국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것이 지난해 9월이다. 사실 중국정부는 애초부터 협상할 뜻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2년 전부터 사찰에 대한 애국훈련을 강화하는 등, 인권탄압과 감시를 더 강화해 대다수 티베트인들조차 협상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 제스처를 한 것에 불과함을 모르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달라이 라마가 귀국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던 티베트인들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했다. 중국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에 대한 분노, 이런 것들이 이번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진 주요한 하나의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애국훈련은 '문화 학살'이렇게 티베트 내에서 벌어진 세 번의 대규모 항쟁은 대부분 그들이 존경하는 종교지도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최소한 티베트인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임을 아는 이라면 필자의 이러한 분석에 충분히 동의할 것이다. 지금도 대다수 티베트인들에게 종교는 삶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다. 한때 6백만 인구 가운데 60만명이 출가승려였을 정도로 티베트인들에게 출가는 가장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승려를 보물로 여기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그 정점에 '달라이 라마'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티베트, 특히 사찰에서 강압적으로 애국훈련을 행하고 있다. 애국훈련은 사찰에서 승려들을 모아놓고,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을 돌아가며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차례로 밟고 지나가게 하기도 한다.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지녔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것조차 마다 않는 티벳인들에게, 이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다.
티베트를 여행하거나, 티베트인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중국 정부의 강압이 티베트인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걸 알면서 이런 정책을 일삼는 중국정부의 행태는 교활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거부하면 체포되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징역을 산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최근 수년 사이 이와 같은 애국훈련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런 소식을 듣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에게 "나를 비난하고 사진을 밟고 다녀도 좋으니, 그것을 이유로 잡혀가거나 고통을 받지 마라"고 특별한 부탁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최근 달라이 라마가 중국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 학살'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어쨌든 이걸 중국 정부와 상당수 중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깟 비난 한마디하면 되고 사진 밟으면 되지, 달라이 라마가 밥을 주는가 떡을 주는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티베트인 입장에서는 이런식으로 중국의 식민통치가 악랄해질수록 더 달라이 라마에 의지한다. 그래서 시위마다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가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이다.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티베트 망명정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야만적 탄압으로 2008년 4월 말 현재 티베트인 최소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4천명 이상이 구금되었다. 애초 사원으로 피신했던 시위대는 사원에 난입하여 항의하는 승려들까지 잡아가는 중국경찰과 군대에 떠밀려 대부분 산악지대로 다시 몸을 피한 상태라고 한다. 얼마 전 산악지대에 피신한 시위대를 쫓던 한 티베트인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중국 경찰에 고용되었던, 우리식으로 말하면 매국노로 비난받던 그는 티베트인들 두 사람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언제든 무장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만큼 급박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이번 티베트인들의 시위는 중국정부의 주장처럼, 애초부터 과격한 폭동으로 기획된 것도 아니고, 달라이 라마의 사주를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진압, 특히 티베트인들이 존경하는 승려들을 매우 폭력적으로 탄압한 데서 촉발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피압박 식민지 민중이 처음부터 제국주의 국가의 경찰을 공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60년간 철저히 비폭력 독립운동을 고수해 온 티베트인들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힐 일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눈으로만 티베트를 바라보려 한다. 농노를 해방시킨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이도 적지 않고, 일제치하의 경험을 벌써 잊은 것인지 중국의 강압적인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며 손을 들어주는 이도 있다. 심지어 진보운동,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미국의 적수가 될만한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티베트 문제에 손사래를 친다.
그들에게 역지사지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이야기만을 들어보았을 뿐, 티베트 민중들의 고통과 주장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라마교'라는 중국 정부의 말도 안되는 왜곡만 들었을 뿐, 티베트 불교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접해본 적도 없다.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 50년대 식민지 이전의 티베트가 노예와 같은 끔찍한 삶을 산 지옥과 같은 곳이었는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의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적 사고로 우리가 티베트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우리 안의 정의와 양심을 외면하는 또 하나의 야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이 기사는 티베트평화연대 정웅인 대변인의 글입니다. 그는 6월 10일 저녁 7시 30분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2008년 봄 티베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문의 02-336-5642 티베트평화연대 홈페이지 www.peacetib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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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항의하고 한국인들의 지원과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시민,평화,종교,인권단체등이 모여 3월25일에 결성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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