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광화문우체국앞에서 경찰버스로 만든 바리케이드에 막히자 태극기와 각종 종이피켓을 버스에 붙이고 있다.
권우성
'지도가 없으면 안된다'라는 생각, 시대착오적입니다또한 '지도가 없으면 질서가 없다'라는 것도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까? 지난 일요일 행진, 또 어제 행진을 보십시오. 누가 앞에서 끌고 가지 않아도 너무나 질서 있게 우리는 행진했습니다.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빌딩숲을 우리는 누볐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집단 지성' 혹은 '떼 지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합니다. 개미들은 혼자일 땐 사실 멍청한 동물이지만 집단속에서 누구의 지휘가 따로 없어도 질서 있게 위험을 피해가며 먹이를 향해 갑니다. 개미도 이럴 진대 사람들은 어떨까요?
누군가의 지도가 없어도 대중들은 핸드폰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박수와 환호성으로 진로를 정하며 잘 행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앞에서 인도하려고 할 때마다 혼란이 가중되었던 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간 열심히 운동해 오셨던 '다함께' 분들에게 대중들 각자 각자는 성에 안 차실지 모릅니다. 의식도 없고, 규율도 없어 보이시겠지요. 하지만 좀 더 대중을 신뢰하시고,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다함께'는 같은 대중의 무리가 되어 옆에서 '경험 없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들을 보완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다함께'를 비롯한 대중운동단체들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민이며, 또 운동권입니다.
지금처럼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세요그리고 한규환님께서도 사실을 몇 가지 잘못 알고 계신 게 있어 일단 지적하려고 합니다. 지난 28일의 상황에 대해서입니다. 28일의 상황은 명백하게 '다함께' 회원분들께서 맨 앞에서 대오를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뛰다 걷다 반복하느라 많은 시민들이 뒤에 처졌습니다.
그런데 동대문까지 와서 뒤의 시민들과의 어떤 '합의'도 없이 앞에 계시던 '다함께' 분들만의 '결의'로 대오가 해산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뛰는 걸 따라가지 못해 뒤에 남아 있던 시민들 중에서는 경찰의 침탈로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다함께'가 시민들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라는 오해까지 나왔겠습니까?
하지만 감사드릴 것은, 여러 비판을 '다함께'도 겸손히 수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29일) 집회에서 '다함께' 회원분들은 이전처럼 앞장서려 하지 않으셨고, 뒤와 옆에서 훌륭하게 행진을 진행하셨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지금처럼 열심히 '잘'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함께'가 조직이라서 싫다는 게 아니구요,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집회의 '주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함께 싸우자는 것입니다. 그럼 서로의 오해는 불식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본래 저는 '다함께' 분들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리에서 제가 의견을 제시하면 다들 들은 척 안 하고 뒤돌아 가시더라구요. 그리고 홈페이지에라도 가서 의견을 남기려 하니까 자유게시판이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밖의 의견을 경청할 때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어쩔 수 없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실은 것입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범국민대책위 여러분들께] '중심은 여러 개일 수 있습니다!'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어제 방송차 앞에서 '방송차를 빼달라'고 요구하던 시민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책위 분들이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 열심을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또 '옆에서' 함께 해 주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어제 방송차 마이크를 잡고 외치시던 여성 활동가분은 솔직히 지나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책위의 안내를 받으셔야 합니다'라니요. '상황실의 정보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라니요. 우리들은 상황실이 없어도 이미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정보를 다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오히려 방송차가 앞으로 나갈 때마다, 시민들은 움직이려 하는데 앉자고 할 때마다,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질서였고, 방송차가 혼란이었습니다.
만약 범국민대책위가 의도한 대로 시위가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리 빵빵한 방송차 한 대가 광장을 장악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머지 대중들이 그저 '청중'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탄핵반대 집회 때도 그랬습니다.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는데 모두 '청중'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양한 요구들이 마구마구 터져나올 수 있는 시점에서 그저 '탄핵 반대'라는 하나의 구호 속으로 그 요구들이 파묻히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