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조건을 담은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남소연
설마, 설마 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다. 29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끝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의뢰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 협상이 왜 굴욕적이고, 얼마나 파괴적인지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그 협상의 성격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5월 29일을 신종 국치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지나간 세기 동안 우리 민족에게는 여러 차례 치욕적이고 파괴적인 역사가 있었다. 을사늑약에 이은 경술국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5·16과 12·12 쿠데타 그리고 5·18에 이루어진 광주시민들의 참변 등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을사늑약의 5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비단 을사늑약뿐이랴? 민족이 치욕과 파괴를 감수해야 했을 때에는 언제나 그것을 주동한 을사오적과 같은 무리의 만행이 번번이 있지 않았는가?
1987년 6·10 항쟁 이후 우리 국민은 이전의 시대보다는 현저히 나아진 삶의 조건을 향유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강대국들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양극화와 정체성 상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의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아 갔고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가운데 삶의 질이 향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들은 모국에 대한 자부심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5월29일은 신종국치일...이를 가능케 한 '도적들'하지만 이번에 졸속으로 체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은 6·10 항쟁 이후 우리가 어렵사리 얻은 가치와 희망들을 일거에 파탄 내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협상으로 인해 우리의 건강과 행복 추구권은 무색해졌으며, 우리의 민족적 또는 국가적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져 버렸다.
이 협상은 IMF보다도 더 불량한 후유증과 혹독한 시련을 우리에게 안기리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협상을 '늑약'(勒約)이라고 부르는 한편,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을 일컬어 '도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미국 상공회의소에 가서 박수를 하는 대통령에게 처음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협상은 검역주권의 포기각서나 진배없다는 점에서 지독히 굴욕적이었고, 모든 국민을 괴질의 공포에 휘말리게 한다는 면에서 엄청나게 파괴적이었다.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생색내듯이 말했다. 국민들은 그 대통령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약간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먹으면 될 게 아니냐"는 식으로 또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국민들은 자기들의 의사를 대통령에게 좀 더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고 마음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일단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청계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정부가 어렵더라도 미국과 재협상해 줄 것을 하소연했다. 국민들은 아주 평화적으로 최소 15번 이상이나 모여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 일로를 치달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인 촛불 시위자들이 불순 세력의 선동에 놀아나는 수준으로 매도되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촛불 집회 현상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매번 말을 바꾸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정부는 영문 번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평화적 집회만으로는 진정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 때마다 수십 명씩의 시위 국민이 영장 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어떤 경찰은 시민을 방패로 찍기도 했다. 가두시위는 다소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매번 참가 인원도 늘어났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들도 버스 안에서 또는 건물 창을 통해 열렬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
협상에 대한 정부의 해명과 사과의 진정성을 믿는 국민은 아주 적었다. 절대 다수라 할 수 있는 80% 이상의 국민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장관 고시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았다. 마침 대통령은 중국에 가 있기도 했다.
장관 고시가 바로 취소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연기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마침 서울 시가지의 촛불문화제도 연일 격렬해지고 있었으며, 지방에서도 진즉부터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무시(?)했던 것일까? 말을 바로 하자면 기실 그들이 우리를 싹 무시한 것이었다.
일찍이 김지하는 독재치하에서 부정을 저지르며 온갖 특혜를 누리던 사람들을 일컬어 '오적'(五賊)이라고 했고, 김용옥은 책에도 없는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헌법재판관들을 가리켜 또 '오적'이라고 지칭한 바가 있다. 이번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이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제1적-이명박 대통령] '소'탐하다가 '대'통령직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