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오바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미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오바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FTA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이 협상을 잘 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속한 비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FTA에 적극 찬성'이라는 공화당 후보 매케인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 논리에 따르면 '한국이 협상을 잘 못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 정부는 FTA에 소극적인 민주당이 집권하면 협정을 추진하고, 반대로 적극적인 공화당이 집권하면 협정을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야 '잘 한 협상'이 될 테니까.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두 후보 모두 무역협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국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발언을 아무리 열심히 파헤쳐도 FTA의 유불리를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오바마는 자신의 주된 지지 계층인 서민들에게, 그리고 매케인은 기업과 기득권층에게 표를 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선거 운동이긴 하지만, 오바마와 매케인 중 누구 말이 사실에 가까울까? 두 사람 모두 옳다. FTA는 기업들에게는 유리하게, 서민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FTA로 인해 심각하게 충돌하게 되는 것은 '나라'가 아닌 '계층' 간의 이해관계다.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간의 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하며, 여기서 정부 개입은 폐지해야 할 '장애물'이 된다. 양국 정부의 개입이 '장애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국가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하다. FTA가 다른 국제교역 형태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최근 영국의 유나이트 노조와 미국의 철강노조가 통합노조를 선언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은 국적을 넘어선 자본의 횡포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FTA, '국가'가 아닌 '계층' 간의 싸움 자유무역체제의 중요한 조건은 ▲ 기업의 권리와 자유 극대화 ▲ 정부 역할 최소화다. 정부는 기업과 국민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으나, 자유무역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거나 폐기된다. 정부의 중재는 '간섭'으로 간주되며, 기업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 분쟁과 소송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부의 역할 축소는 서민층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서민들은 기업 앞에 피고용인과 소비자라는 약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TA 하에서 고용 문제는 '복지'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윤의 문제로 환원된다.
기업들은 최대한 저렴한 자원과 노동력을 찾아 나서며, 이 과정에서 저임금, 고용 불안, 노동 환경 악화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민간 기업의 존재 목적은 '국익'이 아니라 '이윤'의 극대화다.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시설을 외국으로 옮기거나 외국에 투자하는 것은 '국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만 각 나라에서 규제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므로, 이 간섭을 없애자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고용 유연화,' '탈규제,' '민영화' 등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점이다.
기업의 매출 증가를 '국가 발전'으로 이해하는 이명박 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와 유전자 조작 식품의 규제 철폐 등 국민 보건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FTA를 추진할 때, '국익'의 주체가 서민일 수는 없다. 'FTA한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정부 관리들의 말은 옳다. 그들에게는 서민보다 기업이 '나라'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개의 미국, 두 개의 한국오바마와 매케인 가운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둘 가운데 누가 당선되든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 정부를 대단히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두 후보 모두 한국의 어떤 관료보다 영리하기 때문이다. 지지 계층은 다르지만, 두 후보는 FTA의 핵심인 계층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미국과 한국 중 어디가 유리하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 한국 관리들과 달리. 하긴, 중학교 기초단어도 모르는 관리들에게 외교통상을 맡긴 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공화당의 매케인이 되면 FTA가 수월해질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위기에 처한 미국 제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가혹한 법적, 제도적 개선을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언제쯤 현실에 눈을 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