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삼전도비 후면에 새길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일곱 글자를 쓰지 않기 위하여 신익성은 왕명을 거역하였다.
이정근
신익성의 의지는 단호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비문을 쓰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목숨을 내놓은 항명이다. 인조 역시 신익성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임금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는가. 갈등이 깊었다. 심사숙고 하던 인조가 한발 물러섰다.
"병든 자가 어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여이징으로 하여금 쓰도록 하라."
우여곡절을 거치며 목판본이 완성되었다.
"말을 주어 어서 빨리 심양으로 보내라."급했다.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비문을 심양으로 보낸 인조는 비석을 세울 자리에 여러 층계를 만들고 담장을 둘러라 명했다.
사신은 도성에 들어와 있다. 급주마를 보내고 공사를 하고 있다고 면피 될 리 없다. 세우겠다고 자청한 황제의 공덕비를 아직 세우지 않았으니 어떠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잘 보이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칙사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도성에 들어와 있는 사신은 아직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 답답하고 불안하다. 인조는 묘당의 당상관을 불렀다.
"사신의 복심을 알아보도록 하라." 도성에 들어와 있는 사신의 주 임무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역관을 접촉한 비국 당상관이 보고 했다.
"저들이 함구하고 있어 알아낼 방도가 없습니다."
도성에 들어온 사신은 임무를 밝히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며 대접만 받았다. 그들 역시 황급히 떠나오느라 임무가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 도성에 들어왔다.
정보에 주린 임금에게 신하가 내놓은 의견 "관직을 헌상하지요""계속 탐문하라."부스러기 정보라도 얻어 오라는 것이다. 청나라 말에 능통한 역관과 내관들이 투입되었다.
"정역관에게 상을 주면 좋을 듯 합니다."좌의정 신경진이 임금에게 주청했다. 예전엔 정명수 아내의 아우인 봉영운을 벼슬시키자 했고 이제는 역관 본인에게 상을 주자는 것이다.
"무슨 상을 주면 좋겠는가?""정명수를 동지중추부사로 제수했으면 좋겠습니다.""그리하도록 하라."정명수를 만나고 온 신경진이 아뢰었다.
"관직을 내리겠다하니 정역관이 기뻐하는 빛이었고 처남 봉영운을 서로(西路) 변장에 승차해주기를 원하고 매부 임복창이 현재 성천에서 정병으로 있으니 군역을 면제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역관 김돌시의 가족도 벼슬을 내려주기를 바랐습니다.""그리하도록 하라."임금의 명을 시행하던 병조에서 아뢰었다.
"정명수를 동지중추부사로, 김돌시의 종제 김산해를 수문장으로 임용하라는 관교를 상신의 분부에 따라 작성하여 정원에 보냈는데 정명수가 연도를 소급해 달라고 합니다.""원하는대로 해주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