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만...영어로만 알리는 행사 안내종이... 인터넷방에 들어가 보아도 영어판일 뿐입니다...
인디고서원
부산에 ‘인디고서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INDIGO+ING>라는 잡지를 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책쉼터 이름을 나라밖 말로 지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내는 잡지이름도 나라밖 말로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디고서원’이라는 말은 한글로 적어 주니 낫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이곳 인디고서원에서는 오는 8월에 닷새에 걸쳐서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를 연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청소년 책’을 함께 모두어 내는 ‘세계잔치’로 꾸린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책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책잔치 이름은 한글로 ‘서울국제도서전’이고, 알파벳으로 적으면 ‘SEOUL INTERNATIONAL BOOK FAIR’입니다. 한국사람한테는 ‘도서전’이고, 나라밖 사람한테는 ‘BOOK FAIR’입지요.
┌ 국제도서전 / INTERNATIONAL BOOK FAIR └ 유스 북페어 / YOUTH BOOK FAIR해마다 치르는 서울국제도서전 행사를 가 보면, 날이 갈수록 ‘국제’라는 이름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움은 잠깐 접어 놓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이 나라 안팎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잔치를 나눈다고 할 때에, 이와 같은 잔치판을 알리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야 알맞을까요. 아니, 어떻게 붙여야 좋을까요.
┌ 청소년 책잔치 └ 푸름이 책잔치 우리 말은 ‘청소년’입니다. 또는, ‘푸름이’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은 “책으로 벌이는 잔치”, 곧 ‘책잔치’입니다. ‘책’을 ‘圖書’라는 한자로 옮기고, ‘잔치’를 ‘典’이라는 한자로 옮기면 ‘圖書典’이 됩니다.
인천시는 준비가 안 된 ‘도시엑스포(-expo)’를 치른다고 나섰다가, 세계엑스포위원회한테 쓴소리를 듣고는 잔치 크기와 이름을 모두 바꾸면서 ‘도시축전(-祝典)’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로 적어서 ‘祝典’인데, 이 ‘축전’이란 ‘엑스포’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우리 말로는 ‘잔치(또는 한마당)’이고, 한자말로는 ‘祝典(또는 祝祭)’이고, 영어로는 ‘Expo(또는 festival)’이며, 이탈리아말로는 ‘biennale’입니다.
┌ 인디고 청소년 세계 도서전 └ 인디고 푸름이 세계 책잔치나라밖 사람을 불러들이는 잔치판이라고 해서 잔치이름을 아예 알파벳으로 적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한국사람 누구한테나 글을 쓰는 자유가 있고, 이름을 붙이는 자유가 있습니다. 알파벳 아닌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 적는다고 한들, 한자로 적는다고 한들 어느 누가 법으로 따지겠으며, 어느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습니다.
한국사람만 즐기는 잔치판 이름을 외국말로 지어서 쓰든, 온통 알파벳으로 적바림하든, 누가 무어라 탓하겠습니까. 나라밖 사람을 모으든 안 모으든, 이리하여 서울시에서 ‘Hi Seoul Festival’이라고 외친들, 쑹얼쑹얼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영어에 온마음을 바치는 밑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한국땅을 찾아와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나라밖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이 잔치를 어떤 한국말로 가리킬까’ 하고 궁금해 하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한국땅까지 찾아오는 그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말-한국 문화-한국 삶터-한국 이야기’에는 눈길 한 번 안 둘 수 있습니다. 영어로 ‘thank you’를 한국말로 ‘고맙습니다(고마워/고맙네/고맙구나/…)’라고 하는 줄 모르고, ‘good-bye’를 한국말로 ‘잘 가(잘 가렴/잘 가게/…)’라고 하는 줄 모르더라도, 그 나라밖 사람한테는 아무 피해 될 일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한국말과 한국글이 있어서, 영어로 ‘BOOK FAIR’를 한국사람들은 ‘책잔치’로 적고 있음을 모른다고 하여, 이 사람들로서는 무어 아쉬울 노릇조차 없습니다.
- 책 / 書籍,圖書,冊 / book우리들한테는 ‘책’입니다. 한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書籍,圖書,冊’입니다. 영어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book’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나라밖 사람들이 한글로 ‘책’을 쓰고 있음을 모른다고 해서, ‘한국 관광’이 빛을 잃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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