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은 103일 동안 3,000리 강 길을 걸어 이곳 서울 보신각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순례하며 생명을 강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참회와 성찰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 고단한 순례의 길에서 부활절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았으며, 그동안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각 종교계가 한 마음으로 간절한 참회의 기도를 해왔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강을 따라 걷다가 맑은 강물을 만날 때는 순례단의 온몸에도 생기가 돌았으며, 골재 채취와 각종 폐수로 죽어가는 강을 만나거나, 불과 2년 만에 죽음의 사막화가 시작된 새만금 갯벌과 마주칠 때는 그만큼 온몸이 아팠으며, 속울음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또한 순례단은 석가모니 부처님,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운 종교인의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무지와 탐욕을 숨기고 말로만 그럴듯한 설교를 늘어놓으며 반생명, 비인간화의 길에 편승하는 어리석고 어리석은 종교인으로 살아온 날들을 뼈아프게 참회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오늘의 현실도 살펴보았습니다. 인류문명의 고향인 농촌공동체의 붕괴, 실업자와 비정규직 양산 등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미 주민들과 뭇생명들에게 대재앙으로 다가온 삼성의 태안 기름유출 사건과 새만금 갯벌 등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운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한반도 생태계 위기의 태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그동안 한발 한발 걸으며 무지와 탐욕을 지우기 위해 참회하고 또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지도 위에 그린 미몽과 망상의 메모일 뿐이지만, 머지않아 한반도 대재앙의 근원지가 될지도 모르는 ‘운하 설계도’ 역시 한걸음씩 지우고 또 지우며 걸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왜, 무엇이 되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습니다.
이제 순례를 마무리하며, 순례단은 생명의 의지처인 강과 산과 바다를 모시며 되살리려는 마음을 모아 이명박 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이명박 정부에게 호소합니다.
하루 빨리 ‘한반도 운하 백지화’를 선언해 주십시오. 대통령 선거 등을 치르는 동안 스스로 짊어진 멍에를 이제는 벗어던지고,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말로는 국민을 잘 섬기겠다고 하지만, 최근의 ‘광우병 난국’에서 드러나듯이, 새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다 사상 초유의 역풍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러한 정부가 또다시 절대다수의 국민 뜻을 외면하고 ‘운하 강행’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도대체 이명박 정부는 어느 나라, 어떤 국민을 섬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토와 국민은 개조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불어 오래오래 상생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한반도의 강과 산과 바다를 함부로 대하는 ‘운하 구상’은 뭇생명과 국민들의 생명을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공멸의 외길로 내모는 역천의 발상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의 희생양으로 삼은 5대 강을 살리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습니다. 치수 문제와 교육문제는 그 모든 정부의 정책 중 기본이었으며, 5대 강을 살리는 일은 어느 한 정부와 특정자본의 일이 아니라 온 국민과 함께 두고두고 완수해야할 숙명이자 업보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새정부는 처음에는 ‘물류 혁명’을 얘기하다 슬그머니 ‘관광’으로 바꾸고, 그래도 되지 않으니 이제 와서는 다시 ‘치수’를 들고 나오며 운하가 아니라 물길(water way) 혹은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거듭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이런 정부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운하 백지화’가 선결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도저히 따를 수 없습니다.
순례단은 현 정부가 위기를 맞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시기를 청원합니다. 현 정부가 국민과 화합하는 첫 걸음은 바로 ‘운하백지화 선언’일 것입니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민족의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인 강은 우리와 한 몸입니다. 강이 죽으면 우리도 죽고, 강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생명의 강을 살리는 일은 현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모두가 수돗물에서 샛강까지, 그리고 샛강에서 강의 본류까지 지키고 모시며 잘 가꾸어야 합니다. 순례단 역시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한반도의 강과 산과 바다가 맑고 푸르게 되살아날 때까지 함께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순례단부터 온 힘을 모으겠습니다.
먼저 순례를 통해 확인한 생명평화의 마음을 4대 종단의 환경연대와 종교환경회의, 운하백지화국민행동 등 전국의 모든 종교·문화·시민·사회단체들과 국내외의 학계와 연구단체, 그리고 온 국민과 더불어 범국민적이고도 범지구적인 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갈 것입니다. 운하 백지화 촉구 천만인 서명운동에도 적극 나설 것이며,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생명의 강을 지키고 가꾸는 ‘60만 명의 인간 띠 잇기’ 등과 같은 운동에도 적극 동참하고 마침내 한반도가 생명평화 공동체의 땅임을 선언하는 데 온힘을 모으겠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새만금 갯벌을 죽이고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 등을 파헤치는 이 나라에서 오는 10월에 열리게 되는 국제 람사르 회의의 모순을 직시하며,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 낼 것이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5월31일부터 남한강을 따라 다시 순례의 길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종교인들은 당면한 양극화 문제와 생태계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연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먼저 각 종교의 고유한 영역을 서로 인정하며, 생명평화의 대의에 따라 함께 연대하여 21세기의 공동선을 가꾸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지난 2월 12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하여 이땅과 강물을 따라 흐르며 오늘 여기에 도착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는 위와 같은 일을 위한 작은 시작일뿐입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내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바쁘신 가운데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과 진정으로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국민 여러분,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2008년 5월 24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