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에 찾은 은평뉴타운 1지구의 모습. 오는 6월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은평뉴타운은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오마이뉴스 선대식
온통 쇠고기에만 관심이 쏠린 요즘, 때늦게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얘기하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하여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수도권에 한정한다면 뉴타운과 집값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란 희망이 수도권 전역을 뒤덮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70년대처럼 마을길을 넓히고 집을 없애는 방식을 택하였다.
시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총선에서 수도권 주민들이 70년대 개발 독재 세력을 지지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멀쩡한 집 없애고 길 넓히는 데 그들보다 더 솜씨 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 뉴타운 공약이 문제되자 야당은 마치 그것과는 무관한 것처럼 행세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뉴타운과 관련하여 여야의 구별이 없었다. 찍을 만한 야당 후보가 없던 강남과는 달리, 강북에 있던 우리 동네에선 현역 의원이 야당 후보로 나왔고 선거전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선거 직전에 받은 홍보물에서 여당 후보의 공약과 야당 후보의 공약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집 허물고 큰 길을 내겠다는 내용은 같았다. 단지 현역 의원의 선거 공보물이 좀 더 세련되게 보였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야당 후보를 찍을 이유는 없었다. 양쪽이 똑같은 일을 한다고 나선 마당에 그 일을 잘할 것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거 전 '뉴타운 공약', 선거 후엔 '나 몰라라'시민들이 자산 가치의 상승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고, 다음 세대의 생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강남에 집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유 역시 그걸 통해서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은 사라졌다. 정규직의 평균 근무 기간도 10년을 넘지 못한다. 30대에 취업한 사람은 40대 무렵에 회사에서 나와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영업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60세가 넘어 은퇴를 하더라도,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산(資産)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집값이 계속 오르는 지역에 집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집값 상승과 뉴타운 개발을 갈망하는 것을 단지 탐욕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유럽 사회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황금 등의 자산에 집착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문제는 모든 시민들이 이렇게 행동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에 있다(집에 대한 이 열풍이 사회에 이롭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배우는 데 소홀하게 된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로서는 힘들게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마음은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고 그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에 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숙련 근로자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그러한 근로자가 필요한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