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헌에서따분하다. 아빠가 심부름 시키시지 않나?
정부흥
핸드폰으로 집사람에게 "일오에게 자동차 열쇠(타올, 장갑, 톱, 망치, 물통 등 일오가 가져올 수 있은 것이면 뭐든지)보내소" 한 통화면 곧 바로 내 앞에 자동차 열쇠가 배달된다.
시랑헌에는 일오가 들어가서 물놀이 할 수 있는 연못이 있다. 일오는 물놀이를 무척 좋아한다. 등산 때에도 물을 만나면 한 겨울이 아닌 바에는 발이라도 담가본다.
여름철에는 아예 물 속으로 들어가 한 차례 수영을 하고 나온다. 일오를 바라보면서 나와 집사람은 손자들 노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기분을 미리 맛보곤 했다.
올 봄에는 계속하여 터를 닦아야 했음으로 주말에 월요일 출근을 위해 집사람을 시랑헌에 남겨두고 혼자서 대전으로 돌아올 때에는 일오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고, 집사람이 혼자 산속으로 나물을 캐러 가도 그 곁에 있는 일오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일오는 엄마 곁에 있다가도 내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즉시 가장 가까운 단거리로 나에게 달려온다.
아!아! 일오야외국에서 수입된 개들은 몸체가 큰 개일수록 질병에 약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일오가 집에 오고 나서 4~5년 동안은 심장사상충약 등 각종 예방약을 매월 주기적으로 먹이거나 주사했다. 또, 항상 일오에게 신경이 가 있어 조그만 증상에도 곧 바로 동물병원을 갔기 때문에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매 주말마다 지리산으로 일하러 다니면서 너무 바쁘고 피곤한 일정 때문에 거의 일년이 넘게 아무런 약을 먹이지 못했다. 잘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였지만 그 사이 일오는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다.
오는 6월 9일 지리산에 간다는 마음으로 들떠서 집에 돌아와 보니 일오의 거동이 평소와 많이 다르다. 코를 만져보니 말라있고 열이 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난 10일 아침 4시 시랑헌으로 가는 길에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아스피린 한 알을 먹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오가 이상하다며 깨우는 집사람의 독촉에 놀라 일어났다. 일오의 상태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오는 본자리로 돌아갔다. 10일 새벽 2시 40분이다.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라는 수의사의 말이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오열하는 집사람을 달래면서 체온이 식어가는 일오를 싣고 서둘러 시랑헌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이다. 굴착기를 몰고 시랑헌 뒷길로 오르내리면서 일오가 묻힐 자리를 찾아보나 마땅한 자리가 없다. 밖으로 나온 집사람과 상의하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그래! 시랑헌 문을 열고 나오면 가장 잘 보이고, 가장 햇볕이 잘 들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에서 시랑헌에 가장 가까운 곳에 묻어주자. 기준을 정하고 자리를 물색해보니 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 굴착기 삽을 꽂았다.
토요일은 집사람과 일오를 애도하며 보냈다. 집사람은 눈이 퉁퉁 붓고 핼쑥해졌다. 아마 일오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미리 본 모양이다. 자꾸 "일오가 가도 이런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나와 집사람은 이번 일오를 통해 가장 가깝게 죽음의 실체에 근접한 것 같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시랑헌 문을 열고 나오면서 "일오!"를 불렀지만, 그 말 잘 듣던 일오의 모습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죽음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너무 잔혹하다. 일오가 잠들어 있는 쪽에서 전해오는 잔잔한 메시지가 가슴을 흔든다.
한곳에 집중하시면 다른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빠의 성격 때문에 저는 할 수없이 아빠 곁을 떠납니다.아빠의 요즈음 혈당관리도 무리한 산일 때문에 안 되고 있잖아요? 아빠! 중도(中道)를 견지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오! 나는 너를 내 가슴에 묻었구나! 정말로, 너는 내 복에 과한 존재였더란 말이냐? 일오야! 이 아빠를 용서하고 잘 가거라! 진정으로 엄마와 나는 너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개를 키우다 실패한 쓰라린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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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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