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림산, 철쭉은 만개한 지 나흘쯤 지나보였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배지영
새벽에 일어나서 일림산에 올랐다. 능선 위는 철쭉 천지였다. 절정에서 나흘쯤 지났을까. 그래도 아름다웠다. 아이를 자게 내버려 두고 온 게 후회될 만큼.
앞으로 3~4년만 지나도 아이와 나는 서로를 '안드로메다'처럼 멀게 느끼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바락바락 싸울 수도 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더 자주, 함께 산을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희복 선생님네 부부는 주희·진우가 5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녔다. 사춘기를 맞기 전에 지리산 종주도 같이 했다. 이 아이들의 바탕에는 그 때 힘이 깔려 있어서 20살 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거다. 바람을 피해 쭈그려 앉아 사과를 먹고, 내려가면서도 '내려갈 길이 멀다'고, 듣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투정을 부릴 수 있는 거다.
나는 지난해부터 주희와 함께 여행하는 사이가 됐다. 진우는 그 때 고3이어서 혼자 남았다. 주희는 주말마다 부모님을 빼앗아간 사람 중 한 명이 나인데도, 뒤통수가 따갑게 나를 째려본다거나 '이제야 원수를 만났군'하는 한풀이를 하지 않았다. 나보고 선뜻 "이모!"라고 불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