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40) 미꾸라지두부

[우리 말에 마음쓰기 307] '두다리'와 '양다리', '바깥잠'과 '외박'

등록 2008.05.13 11:48수정 2008.05.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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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미꾸라지두부

입맛을 돋구는 먹을거리 가운데 ‘추어탕’을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몇 그릇 먹어 보았습니다. 늘 다른 분들이 이끌어서 밥집으로 가서 얻어먹는데, 어느 밥집을 가 보아도 모두 ‘추어탕’이라고만 적을 뿐, 이 국이 무엇을 넣고 끓이는가를 또렷하게 밝혀 놓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횟집에 가면 ‘넙치’를 파는 곳은 없습니다. 오로지 ‘광어’만 팔 뿐입니다. 우리 물고기이름은 ‘넙치’이고, 이 ‘넙치’를 한자로 뒤집어씌워서 ‘廣魚’예요. ‘넙치’에서 ‘넙(넓다)’을 한자로 옮기니 ‘광(廣)’이거든요.

 ┌ 추어(?魚) = 멸치
 ├ 추어(鰍魚) = 미꾸라지
 ├ 추어탕(鰍魚湯) : 미꾸라지를 넣고 끓인 국
 │
 └ 추두부 : 미꾸라지를 넣은 두부

이와 마찬가지로, ‘추어’는 우리 물고기이름이 아닙니다. 우리 물고기이름은 ‘미꾸라지’지요. 세상 어느 고기잡이가 ‘미꾸라지’ 아닌 ‘추어’를 잡는다고 할까요? “추어낚시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르거나 잡을 때는 ‘미꾸라지’인데, 사람들 밥상에 오르는 동안 이름이 ‘추어’로 바뀝니다.

얼마 앞서 어느 방송 풀그림에 ‘추어탕’ 이야기가 나오며, ‘추두부’라는 먹을거리를 함께 이야기합디다. ‘추두부’라 해서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우리 말 ‘미꾸라지’를 한자로 바꾼 ‘鰍’를 앞에 붙여 ‘추 + 두부’더군요.

 ┌ 미꾸라지국
 └ 미꾸라지두부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검은콩을 넣어 빚은 우유를 가리켜 ‘검은콩우유’라 하면서,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를 ‘바나나맛 우유’라 하면서, 말랑말랑한 두부를 ‘부드러운 두부’라 하면서, 왜 미꾸라지를 넣은 두부는 ‘추두부’라 하지요? ‘미꾸라지’라고 적으면 구역질이 나고, ‘추어’라고 하면 무슨 물고기인 줄 몰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까.

ㄴ. 두다리, 세다리 - 양다리


.. 양다리, 세다리는 당연한 무자비한(?) 바람둥이. 쿨하고 마이 페이스에 처세의 달인 ..  <노다메 칸타빌레 캐릭터북>(니노미야 토모코/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06) 45쪽

‘쿨(cool)’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아찔아찔합니다. 어떤 모습을 가리켜 ‘쿨’이라 하는지 종잡히지 않아요. 이런 말을 안 쓰면 아무개 성격이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나 싶기도 하고요. 뒤이은 “마이 페이스에 처세의 달인”이란 말에도 어질어질합니다. 그냥 못 들은 셈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 양다리(兩-) : 양쪽 다리
 │   - 후들거리는 양다리에 안간힘을 모으며 다부지게 걸음을 떼어 놓았다
 ├ 양다리(를) 걸치다 : (관용) 양쪽에서 이익을 보려고 두 편에 다 관계를 가지다
 │   ≒ 두 다리를 걸치다
 │   - 알고 보니 그는 이제까지 나와 그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
 ├ 양다리 / 삼다리
 └ 두다리 / 세다리

한 사람이 두 사람하고 연인 사이로 사귀는 일을 ‘양다리’라 하는데, 세 사람하고 연인 사이로 사귄다면 ‘세다리’라 하고, 넷하고 사귄다면 ‘네다리’라 합니다. 사람 사귀기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할 때 이익을 얻는 일에도 쓰고요.

문득 생각해 보았는데, 두 사람하고 사귈 때는 ‘양(兩)’이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셋을 넘어가면 왜 ‘세-네-다섯-여섯’ 같은 토박이말을 쓸까요. 이런 말씀씀이라면, 두 사람하고 사귈 때에도 ‘두다리’라 하면 좋지 않을는지요.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이 두다리를 걸치고 있다고?”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다만, ‘두다리’는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고, ‘양다리’만 국어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ㄷ. 바깥잠

.. 대통령 선거를 끝내고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 이후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박이일도 여행이라 이름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아뭏튼 우리 부부는 집이 아닌 낯선 곳으로 떠났다 돌아왔답니다. 우리 부부 결혼사에서는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큰 사건이었습니다. 바깥잠 자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남편 덕에 그 흔한 여름휴가도 몇 번 챙겨 보질 못한 세월이었습니다. 바깥잠 자 본 기억을 꼽기 위해서는 다섯손가락도 너무 많을 정도였습니다 ..  (어느 인터넷모임 게시판에서)

혼인한 뒤 열 해만에 함께 먼 나들잇길을 떠나 보았다는 분 글을 읽습니다. 얼마나 바삐 살았으면, 얼마나 고달피 살았으면, 부부 둘이서 나들이를 다니지도 못했으랴 싶지만, 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바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외박(外泊)] 자기 집이나 일정한 숙소에서 자지 않고 딴 데 나가서 잠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돌아올 때면 으레 ‘외박’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외출(外出)’과 ‘외박’ 두 가지를 얻어서 한나절이나 하루밤을 부대 바깥에서 보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부대 ‘바깥’으로 나가서 ‘외출’이고, 부대 ‘바깥’에서 자기 때문에 ‘외박’이라 한다면, ‘바깥나들이’와 ‘바깥잠’이라고 가리켜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외(外) + 박(泊) = 외박
 └ 밖/바깥 + 잠 = 바깥잠

집에서 먹으면 ‘집밥’이고, 집 바깥에서 먹으면 ‘바깥밥’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이면 ‘집일’이고, 집 바깥에서 하는 일이면 ‘바깥일’입니다.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집사람’이고, 집 바깥에 있는 사람이면 ‘바깥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쓰는 말은 ‘우리 말’이나 ‘토박이말’이고, 나라밖 사람들이 쓰는 말은 ‘바깥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살려쓰기 #우리말 #우리 말 #미꾸라지 #바깥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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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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