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 촛불집회 참가로 가족이 하나되다

등록 2008.05.12 19:17수정 2008.05.12 19:1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5월 2일 금요일 밤의 일이다. 밖에 일이 있어 자정이 다 돼서 퇴근했는데 컴퓨터 하고 있던 고3 아들이 나를 보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대난리가 났다고 했다. "검역주권 내준 것은 절대 안 된다"며 내일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도 요즈음 돌아가는 심상찮은 분위기는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학교 친구들과 그 문제로 대화를 나눠 세 명이 가기로 했다며,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드디어 3일 토요일이 왔다. 아내는 물통을 하나 내주었다. 저녁에 배고프면 안 되니 밥 사먹으라고 용돈도 주었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이니 몸조심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 말에 내가 "4·19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이 생각난다"하고 말했더니, 아들은 "이 한 몸 바쳐 막을 수만 있다면"이라고 농담으로 답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들은 5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 끝내고 잘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그런 아들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평소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지 않았기에 더 기특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마음속으로 아들이 많은 것을 보고 오기를 바랐다.

 

그날 오후가 됐다. 요즈음 하는 일이 많아서 푹 쉬려고 했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들 따라 현장에 가고 싶었다. 가서 아들과 같은 공간에서 마음껏 외치고 싶었다. 아내는 아들 있는 곳에 간다고 하니 잘 다녀오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보신각 종 앞에서 잠깐 집회에 참가했다가 7시가 되어 청계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앞자리에 편하게 앉지는 못하고 가장자리에 서서 시민들의 발언을 듣고 구호를 외쳤다.

 

각종 구호와 발언으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들과 간신히 통화를 했다. 아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기뻐하며 소라기둥 근처에서 친구들과 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격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아이에게 끝까지 잘 참석하라고 격려를 하며, 비록 자리는 다르지만 아들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목청껏 외쳤다. 우리 부자는 그 자리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날 시위 현장에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이 참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발언대를 거의 독차지했다.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는 수많은 시민의 호응을 얻었다. 학생들은 쇠고기뿐만이 아니라 학교 자율화 조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했다. 수업할 때에 발표하라면 대부분 고개 숙이고 안하는 애들이 어떻게 이런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지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촛불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집회가 다 끝난 후 진행자의 말에 따라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나도 시위용품 몇 개를 주워 한곳으로 갖다 놨다. 아들은 친구들과 조금 더 있다가 간다고 했다.

 

그날 밤 11시가 다 돼서 아들과 극적으로 서울역에서 만났다. 내가 늦게 저녁을 먹었는데 서울역에서 인천 가는 차를 타는 시간이 맞아 떨어져 만난 것이다. 붉게 상기된 표정의 아들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들은 정말로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아들은 무척 피곤한지 차에 타자마자 내 몸에 기댔다. 19세 고3 아들이 50세 아빠를 이곳까지 불러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자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지난 8일 목요일 밤의 일이다. 문화방송 <100분토론>에서 그 문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몸은 피곤하지만 그것은 꼭 보고 싶었다. 출연진을 보고 거실에 있는 아들에게 진중권도 나왔다고 했다. 며칠 전 주간지 <시사IN>에서 그를 유심히 보던 아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늦게 자율학습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도 아들은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부자는 또 의기투합해서 그 프로를 봤다.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와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공방이 매우 치열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재미동포가 나와서 그곳의 분위기를 정부 발표와는 딴판으로 전해주는 바람에 더 빨려 들어갔다.

 

TV를 보면서 아들과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모르는 것은 아들이 알려주었고, 아들이 모르는 것은 내가 알려주기도 했다. 어느덧 우리 부자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해 준전문가가 된 것 같았다.

 

100분이 아니라 자그마치 180분의 기나긴 토론이었다. 아들은 더 이상 보기 힘든지 끝나가 30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최대한의 인내력을 발휘해 끝까지 다 봤다. 보면 볼수록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쉽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고 화가 치솟았다.

 

그로부터 3일 후인 11일 일요일 밤의 일이다. 아내가 이번에는 한국방송공사의 <심야토론>을 본다는 것이었다. 쇠고기 수입에 관한 것인데, 지난 번 <100분토론>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내는 열심히 그 프로를 봤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우리집에서 아들로 인해 제일 큰 관심사가 됐다. 급우들과 학교에서 이 문제로 분노를 터뜨리다가 급기야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참가하게 됐고, 그로 인해 나도 덩달아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수입 반대를 외쳤던 것이다.

 

평일 너무 늦은 시간에 해서 거의 생방송은 보지 못했던 <100분토론>은 내가 아들에게 권한 것이다. 그것을 보며 우리 부자는 또 하나가 됐다. 그 영향은 며칠 후 아내가 <심야토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내가 그런 프로를 혼자서 다 본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 일로 인해 우리 가족은 큰 추억을 갖게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었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크나큰 공감대를 갖게 되었다. 10년 후, 20년 후 혹은 그 이후라도 우리 가족은 한 자리에 모이면 이 사건을 소재로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특히 아들과 나는 서울 청계광장까지 가서 함께 반대를 외쳤던 이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2008.05.12 19:17ⓒ 2008 OhmyNews
#유정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