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Oil on board, 1886-7,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gogh
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로 살았던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와 외향적인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Annaornelia van Gogh-Carventus, 1889-1906)의 맏아들이었으며, 어릴 적에는 시골의 목사관에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1869년네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이 시절은 고흐의 삶에 있어서 가장 밝고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인상주의 영향을 받아 화법의 변화를 겪은 파리의 생활위 '자화상'과 아래 '카네이션을 꽂은 정물화'를 그렸던 1886년에 고흐는 든든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그림공부를 하러 갑니다.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impressionism) 양식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이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1886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과 새로운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적이었습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의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생레미 요양원에서의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