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남소연
10대들에게 머리카락은 또다른 '자아'다. 정부나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코웃음조차 아까운 치기어린 일이겠지만 10대들에게 머리카락은 깎으면 또 자라나는 터럭이 아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0대를 거쳐갔거나 아직도 10대인 이들은 특히나 나이를 불문하고 눈물나도록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억눌린 두발 자유를 향한 외침에서 10대들의 인권감수성은 놀라울 만큼 성장한다. 10대들이 온전하게 자신들만의 주제로 집회문화를 형성한 것도 두발자유화가 처음이었다. 두발에 대한 인권감수성의 성장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 같다. 그들의 요구와 달리 현실에서 두발 자유는 도달할 수 없는 벽이었지만 그들은 지금도 각종 교육청 게시판과 인터넷을 이용해 두발 자유를 부르짖으며 싸우고 있다. 바로 이것이 10대들의 의식을 성장하게 한 동력이 되었다.
또 있다. 10대들이 왜 하필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이처럼 크게 반응하는(혹은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매일같이 쇠고기를 반찬 삼아 먹는 것도 아닐 테고, 끼니마다 쇠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을 한 숟가락도 못 먹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10대들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이처럼 크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그 광우병 쇠고기를 '강제로' 먹어야 하는 운명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퓨전급식'이라 부르는 불량한 학교 급식을 통해서 광우병 쇠고기를 먹고 얼마 못 살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불안감 때문이다.
10대들이 학교 급식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폭발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가 재충전되는 양상이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급식사고는 물론이고 정체 불명의 요리들이 먹을거리로 둔갑해 제공되는 퓨전급식 앞에 아이들은 충분히 분노하고 있다. 국이나 반찬에서 수세미 조각이 나오거나 벌레가 나오는 정도는 이제 상대할 것조차 안 된다.
바로 이런 먹을거리에 대한 위기의식, 자신들이 제대로 된 먹을거리조차 제공받지 못 한다는 의식의 공감,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수입되면 자신들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10대들에게 촛불을 밝혀 청계천으로 모여들게 했다. 밤 12시 강제야자까지 하려면 하루 두 끼나 먹어야 하는 퓨전급식에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나온다면? 10대들이 광우병 쇠고기에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때문인지 10대들은 어른들보다 휠씬 자세하게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촛불 문화제를 체험한 10대들의 선택 공교롭게도 두발과 급식 문제는 10대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다. 어제까지 10대였다가 오늘부터 20대가 되면 '남의 일'이다. 20대가 되는 순간 머리카락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퓨전급식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두발과 급식은 10대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절체절명의 무엇인 셈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기폭제가 되어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통해 핵폭발 한 것이 지난 촛불문화제였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소통 없는 일방적 교육정책들과, 광우병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이라는 손찌검이 울고 싶은 10대들의 뺨을 호되게 때려준 꼴이 된 것이다.
10대들은 촛불문화제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울면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상스러운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무례함'으로 억압당해온 자신들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나 10대들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이라고 하는 판단까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촛불문화제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 10대들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10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무대를 마련하는 방법을 제대로 학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4~5년 후 투표권을 가진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도 이들이 지금, 오늘의 상황에서 배우고 체험한 내용과 앞으로 좀 더 겪게 될 것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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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규제·퓨전급식 억압당한 10대 그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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