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피자 주문'에 도전하다

등록 2008.05.06 08:34수정 2008.05.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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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연휴에 도서관


화창한 5월의 날씨. 거기다 황금연휴까지. 친구들은 미리 이리저리 계획을 짜더니 여행을 떠납니다. 같이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제가 듣는 수업의 교수님들이 약속이라도 하셨는지 과제 폭풍러시를 주셨네요.

이 놀기 좋은 5월의 황금연휴에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슬픈 청춘이여!  도서관에서 침 흘리며 헤맵니다. 그러다 일어나서 정신차려야지 하고 기지개를 폈더니, 배가 고프다네요. 항상 공부할려면 이렇습니다.

#2. 울며 피자먹기

점심을 먹어야하는데 혼자먹기는 싫고해서 궁리 끝에 동아리 방에 갑니다. 혹시 누가 있을까해서요. 동아리 방 근처에 도착했네요. 어라~ 어째, 동아리방이 시끌벅적합니다. 나와 같은 불쌍한 영혼들이 있나보다 하고 들어갔더니, 미국인 친구 셋이 있네요.

우리 학교 교환학생입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한국 친구들 다 고향 내려가거나 놀러가서 심심해서 왔더더군요. "옳다구나!" 하는 생각에, 같이 점심먹자고 했습니다. 친구 한 명이 '파파존스' 피자가 먹고 싶다네요. 원래 피자를 끼니 대용으로 먹지 않는 저로서는 말리고 싶었지만, 혹시나 버려질까 두려워 동의했습니다. '울며 피자먹기'가 되겠네요.


#3. 114 안내원과 유쾌한 대화

메뉴에 대한 합의를 봅니다. 이제 시키는 일만 남았네요. 3명이 미국인이다 보니 시키는 것은 당연히 저의 몫인 듯, 멀뚱멀뚱 셋은 저를 처다보네요.


피자집 전화번호를 몰라서 '114'를 누르려는 순간! 머리 속에 스쳐가는 온갖 공상들. '이거 내가 하지 말고 이 놈들 시켜야 겠다', '영어로 시키면 어떻게 될까'.

제가 우리의 미션을 설명하자, 셋은 재미있겠다는 반응과 함께 서로 하기 싫다고 옥신각신 싸웁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선수가 결정되고 우리의 미션은 시작됩니다.

먼저 114를 눌렀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114 안내원이 전화를 받네요. 우리의 희생양입니다.

114 안내원 : "사랑합니다. 고객님"
미국인 A : "(영어로) 저는 한국말을 하지 못해요. 하지만 '파파존스' 피자집 전화번호가 알고 싶네요."
114 안내원 : "Wait, please"

'띠리띠리띠리리리리~'(지게차 후진할 때 나는 소리가 들리네요.)

우리 넷은 이게 뭘까 당황했지요. 잠시 후.
다른 114 안내원 : "(영어로) 제가 대신 도와드리겠습니다."

놀랐습니다. 114 안내원이 당황하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했는데 이런! 114에는 통역요원이 있었습니다. 비록 114 안내원이 미국 네이티브의 '파파존스'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두세번 전화를 다시 해야했지만요(고유명사의 발음은 참 다르더라구요).

#4. 피자종업원과 씁쓸한 대화

어쨌든, '파파존스' 피자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미국인 친구A도 임무완수 했다는 듯 뿌듯해 합니다. 전 또 다시 제안을 했지요. 피자도 영어로 시켜보자! 인제 이것들이 좋다네요. 한 번 하더니 재미가 붙은 모양입니다. 우리는 또다른 희생양을 찾아 피자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피자집 종업원 : "여보세요"
미국인 친구 A : "(영어로) Hello! 피자 주문하고 싶은데요. 영어할 줄 아세요?"
피자집 종업원 : "…네?
미국인 친구 A : "(영어로)한국말을 못하는데, 영어할 줄 아는 사람 바꿔주세요."
피자집 종업원 : "Yes…. 어쩌지…. 야, 아!(전화기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네요. 완전 전쟁통입니다. 다시 같은 사람이 받습니다)"
피자집 종업원 : "What Pizza?"
미국인 친구 A : "(영어로)트윈크러스트 딜라이트요. 콜라랑 피클도 주세요."
피자집 종업원 : "Sorry~."

뚜뚜뚜뚜~

그냥 피자집에서 끊어버렸습니다. 영어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것이겠죠. 종업원의 모습이 눈에 훤했습니다. 우리 넷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제가 피자종업원이었다면 저도 당황해서 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씁쓸하더군요.

피자종업원이나 저나 한국에서 영어를 10년은 배웠겠네요.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 누구나 영어할 수 있는 세상은 요원한 듯 하네요. 무엇이 잘못일까요?

한국을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의 허브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세계의 허브가 될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국민의 영어구사능력입니다. 세계의 공용어가 영어로 굳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영어를 잘 해야 외국인이 쉽게 찾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테니까요.

"어륀지, 어륀지~'만 외치지 마시고 긴 호흡으로 영어공교육 강화전략을 세워주세요.
#영어공교육 #피자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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