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업>의 값비싼 시행착오가 남긴 것

등록 2008.05.04 12:44수정 2008.05.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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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 <이경규-김용만의 라인업>은 최근 예능가에 범람하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 '반면교사'였다고 할 만하다.

 

'생계형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라인업>은 지난 9월 첫 방송에서 멤버들이 이경규의 규라인과 김용만의 용라인, 두 편으로 나뉘어 프로그램 생존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구도로 출발했다. '총성없는 전쟁터'로 불리우는 예능계의 생존경쟁을 드러내놓고 보여주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문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곧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라인업>은 오히려 의욕만 앞세운데 비하여 확고한 중심이 없는 '백화점식 리얼 버라이어티' 전략의 한계를 노출했다. 초반 내세웠던 출연자들의 서바이벌 구도가 별다른 흥미를 끌지못하고 폐지된 이후, 매주마다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는 '무한도전'식 컨셉트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라인업>은 끝까지 '어설픈 감동과 독한 웃음', '기발한 아이템과 멤버들의 개인기' 사이에서 어정쩡한 줄타기를 거듭하다 방향을 잃었다.

 

'서해안을 살리자' 같이 공익-시사성을 부각시킨 일부 에피소드들은 호평을 얻기도 했으나, '병영체험' '하인즈워드 특집' '동방신기 편' 등은 기존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써먹었던 설정들의 재탕에 지나지 않았고, '모의대선' '방보러왔습니다' '힙합맨 되다' 등은 소재 자체의 호평에 비하여 재미로서의 완성도는 떨어졌다. <무한도전>과 비교할 때 아이템의 차이보다는, 재미를 끌어내는 구성력의 차이가 더 두드러졌던 부분이다.

 

사실 <라인업>의 오류는 시작부터 끝까지 동시간대 경쟁작 <무한도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라인업>은 멤버 구성이나 프로그램의 포맷면에서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무한도전>을 의식하여 만들어진 아이템임을 숨기지 않았고, <무한도전>과의 과도한 경쟁 강박증이 '아류'의 이미지를 강화시켜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4월 이후 <무한도전>의 일시적으로 침체기를 맞이하던 상황에서도 <라인업>의 시청률 반사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이 프로그램이 <무한도전>과의 비교를 떠나 독자적인 매력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다. <라인업> 사상 가장 많은 인력과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감독 되다' 편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혹독한 평가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오늘날 <무한도전>이 그 전형을 구축한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진화의 결과물이다. <무한도전>은 매주 새로운 미션에 도전하는 과정과 멤버들간의 유기적인 상호 조화를 바탕으로, 지금의 캐릭터와 상황극을 자연스럽게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라인업>은 처음부터 기존의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를 끌어와 복제하는 길을 택했다. 이경규의 '버럭'이나, 김구라의 '막말', 김용만의 '뻔뻔함'은 이미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보아왔던 이미지다. 이들의 캐릭터나 상호 관계는 다른 프로그램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개성강한 몇몇 캐릭터가 입담을 주도한 것에 비해, 초창기 이광채, 이동엽, 조원석에서 이윤석이나 윤정수, 김경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은 마지막회까지 별다른 존재감을 가지지못하고 그저 '숫자만 채우는' 캐릭터에 그쳤다.

 

편집의 불균형에서도 드러나듯이, 주목도높은 일부 멤버들에게 치우쳐 전체적인 멤버간 상생효과를 살리지 못한 한계는, 출연자보다 연출자와 제작진의 한계라고 볼수있다. <라인업>이 아니어도 이미 여러 프로그램에서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는 이경규, 김구라 등 스타급 출연자에 비하여, 진정 프로그램 컨셉트에 걸맞는 '생계형 연예인'이라 할 만한 멤버들의 캐릭터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한계가 이 프로그램의 예고된 몰락을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률 경쟁에 조급증을 느낀 제작진과 방송사의 무리수도 한몫을 담당했다. <라인업>은 초기부터 출연자들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몰래카메라'와 김구라, 김경민 등 일부 출연자들의 과도한 '막말 파문' 등으로, 프로그램의 완성도보다는 '노이즈 마케팅'에 의존하여 시선을 끌려한다는 빈축을 사야했다. <슈퍼 바이킹>, <작렬 정신통일> 등에 이어 <라인업>까지 성급하게 추진한 아이템으로 나란히 조기종영의 비애를 피해가지 못함으로써 SBS는 스스로 '예능가의 무덤'을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08.05.04 12:44ⓒ 2008 OhmyNews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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