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할머니.(자료사진)
김대홍
친손자와 외손자. 그러고 보니 큰손자가 5살 무렵으로 생각된다. 어느 명절 때였던가? 딸아이식구가 시댁에 갔다 우리집에 왔다. 우리집에 들어서자마자 큰손자는 나한테 "외할머니, 외할머니"하며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난 그 말이 정말이지 낯설었다. 그 소리가 나한테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싫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손자도 처음 배운 그 말이 신기해서 들어서자마자 나를 불렀을 것이다.
딸과 사위도 의아하다는 듯이 큰손자를 쳐다본다. 난 "우진아, 외할머니?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응 연신내 할머니가 그러는데 대야동(정현순) 할머니는 외할머니이고, 나는(연신내) 친할머니래. 할머니 외할머니가 뭐야?"하며 내게 되묻는다. 이상했다. 내가 외할머니가 맞긴 맞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생소하고 서운하게 들리던지….
잠시 후 밥상이 차려졌고 술도 한잔씩 하게 되었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난 술기운을 빌려 사위와 딸에게 내 서운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진이가 외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왜 그렇게 서운한지 모르겠다"라고…. 딸도 사위도 난감해 하는 듯했다. 남편은 "뭐가 그렇게 서운해 외할머니 맞는데" 한다.
사위도 "그냥 할머니 두 분이 모두 계시니깐. 우진이한테 구별해 주려고 그랬을 거예요"하면서 서운해 하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그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딸과 사위는 그 문제로 조금 티격태격 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말을 듣고 '내가 서운해도 그냥 넘길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올케도 "그 말이 그렇게 서운했어요?"하며 묻기도 했었다. 그랬다. 나는 무척 서운한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었다.
사위의 말처럼 두 할머니의 구별을 위해서 생긴 말이고, 안사돈 역시 손자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했을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쪽구석에서는 그 마음이 선뜻 없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섭섭했던 이유는. 외손자라고는 하지만 외손자라는 개념도 없었고 나의 첫손자, 첫사랑 우진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손자인 우진이한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붓고 있는 중에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더 섭섭했을 것이다. 또 며칠 안 보면 보고 싶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그런 마음 때문이었리라.
예전에 외할머니라고 하면, 친할머니보다 한 치 건너라고 하는 보편적인 생각에 조금은 멀게,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전혀 그런 고정관념과는 아무 상관없는데 말이다.
우진아, 할머니 이름을 불러주는 건 어때?그런 일이 있은 후 딸과 사위는 친할머니, 외할머니 대신 대야동 할머니, 연신내 할머니로 부르라고 큰 손자와 결정을 보기도 했다. 난 앞집 여인에게 "내가 아직은 친손자가 없어서 진짜배기 가짜배기를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외할머니 소리를 들으니깐 그게 그렇게 섭섭하더라고요" 했다. 그도 그동안 외손녀가 첫정이었는데 외할머니 소리를 들으면 왠지 섭섭했다고 말한다.
요즘 외손자와 친손자, 구별해서 정을 주는 할머니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말과 관습과는 아무 상관없이 많지 않은 손자들이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머지않아 친손자가 생긴다 해도 나의 첫정인 우진이는 마지막까지 첫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여 요즘 큰손자에게 내 이름을 가끔 각인시키기도 한다.
"우진아, 앞으로 '정 할머니' 아님 '현순할머니'로 불러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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