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옥수수.하우스에서 키워낸 옆집 옥수수는 벌써 의젓합니다. 옥수수는 6월까지 심어도 되니 조금 늦는다고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강기희
정선 가리왕산 자락에 사는 게으른 농사꾼입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참 게으른 농부입니다. 밭은 벌써 콩풀이 가득한데 이제야 옥수수 씨앗을 넣었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소꿉장난 같은 일이 아닌데도 소꿉놀이 하듯 씨를 심었습니다.
땅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싫어합니다작년엔 1000평 가까운 밭에 피마자를 비롯해 줄광쟁이와 고추·토마토·토란·더덕·도라지·황기·곰취·곤드레 등과 곡식으로는 옥수수와 검은콩·메주콩 등을 심었습니다. 이것저것 심다 보니 남는 땅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주지 않는 밭이라 소출은 형편 없었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는 이유는 적게 일하고 적게 먹자는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농사 지어서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먹고도 조금 남으면 성공이라는 농사법이지요.
옥수수는 봄에 씨를 넣을 때 보고 여름철 옥수수통을 딸 때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저 스스로 작은 씨를 틔우고 대궁을 밀어올려 튼실한 옥수수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비료를 주지 않았기에 다른 집 옥수수보다 옥수수통은 작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옥수수보다 맛이 더 좋다고 큰 소리 칠 정도니 초보농사꾼 제 흥에 겨워 춤을 춥니다. 한편으로는 옥수수를 대하는 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자주 찾아가 헛골에 있는 풀이라도 뽑아주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았으니 무심하기 짝이 없는 주인이었지요.
작년 가을 메주콩은 수확했지만 검은 콩(서리태)은 수확하기 민망해 며칠 전까지 밭에 두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봄까지 콩밭은 새 떼들의 놀이터였습니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나타나 콩을 쪼아먹고 하늘을 날면 다른 무리가 콩밭으로 날아 들었습니다.
콩을 먹기 위한 걸음은 새들만이 아닙니다. 들쥐도 오고 너구리도 오고 오소리도 왔습니다. 저마다 시차를 두고 콩밭을 다녀간 탓에 서로 먹겠다며 싸움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