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갈래" 외치는 이상한 대통령

[주장]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리,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

등록 2008.04.30 12:17수정 2008.04.30 14:16
0
원고료로 응원
 29일 7대 종단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29일 7대 종단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청와대

29일 7대 종단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청와대

29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인물들이 공개되는 날, 과거 보수정권을 목마르게 기다렸던 일부 친일파 후손·기념사업 관계자들이 발표장에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늘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또 하나의 장면, 이명박 대통령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며 "주로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을 정비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출범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한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법률을 개정하여 폐지 또는 손보겠다는 말로 들린다.

 

지난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를 시작으로 출범한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원점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비리감사를 진행하는 감사원까지 나서서 14개 과거사위 중 반민규명위를 비롯한 9개 위원회를 설치 목적과 기능이 유사하거나 연관성이 있다며 통폐합하도록 행정안전부에 통보하였다.

 

과거는 과거고 국익을 생각하자?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젠 5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놓고 싶은 이 대통령은 일본에게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한 것처럼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얘기하는 듯하다. 이말은 "과거는 과거고 국익을 생각해야지"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또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

 

29일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친일문제를 공과를 따져서 균형있게" 보자고 말했다.

 

그의 말은 70평생에서 3~5년의 짧은 시간 동안 일제에 협력한 것을 놓고 친일파로 불리운다는 것은 심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정말 그럴까.

 

일부 친일파 후손이나 관련단체는 5년 혹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실수'로 저지른 일을 갖고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할지도 모른다. 그럼 일제의 칼날에도,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친 신채호와 같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이시영처럼 중추원 부찬의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벌인 인물들은 바보라는 말인가. 서정주는 자기의 사상과 시작(詩作)정신까지 일제에 넘겨주면서 살아남은 친일파가 아닌가. 또한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부와 권력을 얻고 전쟁 물자를 바친 박흥식이나, 언론을 이용하여 일제에 찬양한 방응모 등도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민족이 위기로 몰려 풍전등화에 있을 때,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붓을 적에게 돌리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고자 젊은 청년과 여성들을 전쟁터로 내몰고자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징병제와 학병제를 외친 그들의 공과를 균형있게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 당시 면서기와 순사 등이 마을을 다니면서 공출할 때,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지나간 역사는 되묻지 않는다고, 사라지거나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역사의 흐름에서 과오를 되풀이하면 훗날 뼈아픈 후회를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지금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고 싶은 보수정권이 훗날 영화 <박하사탕>에서 김영호(설경구)가 철로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29일 발언을 들으면서 몇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2003년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원금을 놓고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반대하면서 예산을 삭감했던 장면. 현재 정권을 쥔 한나라당은 반민규명위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의 법률을 놓고도 국민의 염원과 다른 '기형적인 법안'을 만들어 놓았다. 그땐 야당인지라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며 분한 모습을 보였던 그들이 다시 뭉쳤다.

 

또 하나의 장면, 2004년 노무현을 탄핵했던 그 장면처럼, 이번에는 여당의원들이 2008년 과거사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몸싸움을 벌일지도 모르겠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 말처럼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을 정비'하고자 법을 정비 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이들은 과거사 관련 각종 위원회를 원점으로 돌리고 '자랑스러운' 박정희를 부활시키고, 독재의 후계자였던 전두환을 다시 무대로 올려놓는 일까지 생각하면서 무서운 굿판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명박 보수정권은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만큼의 과거사 청산은 아닐지라도...  

 

역사의 시계추를 꺼꾸로 돌리는 이러한 행동을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프랑스는 대독협력자들을 '초법적인 숙청', '사법적 숙청', '행정 숙청'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하는데 앞장섰다.

 

해방 직후 프랑스의 재판소들에서 약 35만 명의 프랑스인이 독일강점기의 행위를 이유로 서류가 검토되었고, 그 가운데 약 9만 8천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약 3만 8천명이 수감되었고, 약 1천 5백명이 정규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 처형되었고, 8천~9천명이 정식재판 없이 처형되었다. 또한 2만 1천명 이상의 공무원이 각종 징계를 받았고, 5천 7백명 이상의 공사 직원과 1만 5천명 이상의 군인도 공무원과 같은 징계를 받았다. 그 외 정계, 재계 인사, 언론계와 문화예술계, 변호사와 의사, 학술원, 종교계, 노동계 등에서도 각각 숙청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프랑스의 과거청산은 무서울 정도로 가혹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해체하였으며, 한국전쟁을 앞두고 좌익혐의자 또는 협력할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들까지 '무법적'으로 학살하였다. 그 이후 정권들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국가주의'에 매몰되었고, 박정희의 독재시절로 접어들면서 과거청산은 요원해졌다. 해방 반세기를 넘겨서 겨우 찾아온 과거청산의 기회조차 위협받고 있으며, "공과를 균형있게"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우리에게는 과거사 청산이 '미완의 혁명'이자 현재진행형이다.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남길 수는 없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만큼은 아닐지라도, 올바른 역사의식에서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 대한 정리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전갑생 기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2008.04.30 12:1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전갑생 기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과거사위원회 #친일파 청산 #친일인명사전 #프랑스 과거청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2. 2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