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김기사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텃밭, 윗사면이 불안정하다.
정부흥
산에서 땅을 얻는다는 것은 석축을 쌓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텃밭을 경사지게 할 수 없어 평지를 만들려고 석축을 쌓았더니 땅 값이 만만치 않게 되어버렸다. 돌 운반비 및 구입비(50만), 굴착기기사 인부임(15만), 굴착기 연료비(10만), 석공인부임(20만), 보조인부임(8만)을 계산하면 임야구입비, 내 인부임, 굴착기 수리 및 감가상각비, 인부들 간식 및 식사비를 재외 한다고 치더라도 평당 20만원이 훌떡 넘어가는 땅이 되어버렸다.
토요일 24일 아침에 시랑헌에 도착하여 김 기사에게 5평의 텃밭을 인계 받아 대전에서 사간 모종을 심으려고 했지만 텃밭 상부의 붕괴 위험성 때문에 모종을 심을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텃밭을 평당 50만원이 넘어가는 땅을 만들 수는 없다. 실제로 경사져서 못쓰는 땅을 감안하면 두 배인 100만 원도 과한 계산이 아닐 것이다.
내가 석축을 쌓아야 하는 사연집사람은 김 기사의 과다한 비용청구 내역 때문에 곧 터질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이다. 일단 김 기사를 돌려보냈다. 김 기사는 우리가 오두막을 일단락 짓고 터를 다듬기 시작할 때부터 같이 일을 시작한 어떤 의미에서는 동지이다.
나는 굴착기 운전기술이 서툴고 김 기사는 사업에 실패하여 굴착기가 없다. 나와 김 기사는 상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구비된 셈이다.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하루에 13만원씩 지불하기로 하고 김 기사를 고용했다. 나도 별난 사람이지만 김 기사도 만만치 않다. 오늘까지 약 50여일 우리 집터 일을 하는 동안 나와 김 기사는 파국으로 치닫는 대립을 세 차례나 하였다.
김 기사는 40여일 우리 일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취직하여 간다고 하면서 우리를 떠나갔고 나는 김 기사 송별식도 해줬다. 건설사 식당에서 만난 안 반장(산동~고달 간 도로공사 시공사의 하청업자, 김 기사를 소개한 사람)이 김 기사가 새 직장에서 일주일도 못돼 그냥 왔는지 쫓겨 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집에서 놀고 있으니 시킬 일이 있으면 불러서 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없는 동안 십여일 일을 부탁하였더니 집사람 상식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명목까지 포함시켜 청구한 모양이다. 김 기사는 가면서 "사모님이 많이 화가 나신 모양이나 먹고 살기 위해 한 짓이니 박사님이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같은 처지의 가장으로서 김 기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나 집사람 앞에서는 같이 맞장구를 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