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통통배의 낭만, 절영도 통통배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영도 나룻배의 풍경

등록 2008.04.27 16:16수정 2008.04.28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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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 오늘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은 통통배 한 척이 영도 대평동과 자갈치 사이를 오간다. 통통배가 오고 갈 때마다 낡고 허름한 도선장에는 평범한 영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자갈치 시장에서 해산물을 산 주부도 있고, 윤기 나는 머리를 휘날리는 여고생도 있다. 어떤 노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지긋한 눈길로 바다를 쳐다본다.

저쪽 뱃머리에선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주변의 풍경을 찍는다. 통통배 위로 날아다니는 한 떼의 갈매기들. 갈매기들은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힘찬 날개짓을 하면서 배 주변을 돌아다닌다. 저 멀리 보이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의 평화로운 모습. 이 배는 100년 전에도 영도와 남포동을 오가면서 수많은 이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이 흩뿌리고 간 사연과 함께.


 배를 타러 가자
배를 타러 가자김대갑

영도와 육지를 잇는 최초의 뱃길은 1890년 한 척의 나룻배로 시작되었다. 영도에 사람들이 점차 모이면서 육지와의 뱃길이 필요해졌는데, 영도 사람들이 돈을 추렴하여 오늘의 봉래동 갯가에서 현재 롯데월드를 신축하는 옛 부산시청 사이에 나룻배를 통한 물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영도에 점차 인구가 늘고 나룻배도 4척으로 늘어날 즈음인 1901년 일본인들이 또 다른 뱃길을 열어 영도나룻배를 따로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 나룻배가 현재 통통배의 시원인 것이다.

당시 영도사람들과 일본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뱃길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배는 수탈을 위한 장치였지만 조선인들의 배는 옥성학교(현재의 영도초등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줄이었다. 배 운영 수익으로 영도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경영하였던 것이다.

 자갈치로 떠나는 배
자갈치로 떠나는 배김대갑

1910년 일본인들은 나룻배를 디젤엔진 동력선으로 바꾸었고 영도나룻배도 뒤질세라 통통선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 의한 합방이 이루어진 후에 옥성학교는 공립학교로 강제 접수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이 학교의 수익원이 되었던 영도 나룻배는 부산부에서 직영하게 되었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나룻배 하나에도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으니 말이다.

1934년 11월 영도다리가 개통되자 영도 사람들이 운영하던 나룻배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 배가 다니던 길에 영도다리가 놓여졌으니 더 이상 효용성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반면 일본인이 운영하던 뱃길은 살아남게 되었고, 이 뱃길이 지금 통통배가 다니고 있는 길이 된 것이다.


 통통배를 타는 도선장
통통배를 타는 도선장김대갑

이름 하여 영도 도선장. 영도 대평동에 자리 잡은 허름한 시멘트 건물. 잿빛 시멘트 건물에는 군데군데 실금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좁고 어두운 통로에 자리 잡은 허름한 매표소. 버스 요금보다 몇 십 원 싼 요금을 내면 바로 배를 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승선권도, 탑승 명부도, 안내원도 없다. 그저 매표소 유리창 너머로 무표정하게 돈을 주고받는 앳된 얼굴의 아가씨 하나만 달랑 앉아 있다.

때론 이 아가씨가 아저씨로 바뀌기도 한다. 하긴 어느 아가씨인들 이 낡고 비좁은 공간에 있기를 좋아할까. 그래서 이 도선장에는 아련한 향수와 정겨운 추억이 흐른다. 70년대의 버스 안내양을 연상시키는 애틋한 그리움이 켜켜이 묻어 있다.
 
 도선 내부 풍경
도선 내부 풍경김대갑

왜 아직도 이 통통배가 유지되고 있을까? 해답은 시간이었다. 대평동 사람들이나 자갈치 상인들이 버스를 이용해서 영도에 가려면 10분 이상 걸리지만 이 통통배를 타면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통통배는 이런 편리함 때문에 아직도 서민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만일 이 통통배가 경제적 효용이 별로 없다면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면 도심 속을 가로지는 통통배의 추억과 낭만도 사라졌겠지.


 신동아시장의 야경
신동아시장의 야경김대갑

곽경택의 영화 <친구>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점은 왜 이 통통배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네 친구들이 통통배를 타면서 우정을 나누는 장면을 찍었다면 아주 그럴 듯한 그림이 되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질 않아 무척 아쉬웠다.

이 통통배에서 바라 본 풍경은 정말 그럴 듯하다. 배를 타고 가면 영도와 자갈치, 용두산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밤이면 정말 끝내주는 부산의 야경을 실컷 볼 수도 있다. 특히 요 근래 준공한 신동아시장의 노란 조명이 밤바다에 어우러진 풍경은 환상적이다.

 부산대교의 야경
부산대교의 야경김대갑

오늘도 통통배는 영도와 자갈치를 오간다. 지난 100년 간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드나들었던 그 뱃길 위로 통통배는 작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갈매기는 여전히 끼룩거리고, 밤바다의 물결은 은린처럼 반짝인다.

부산의 바다 여행은 비단 크루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고도 값싼 통통배로도 얼마든지 부산의 바다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통통배를 타면서 즐겨본 부산의 바다 야경. 아마, 그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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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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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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