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구나

손홍규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

등록 2008.04.26 11:10수정 2008.04.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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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섭이 가라사대>겉표지
<봉섭이 가라사대>겉표지창비
<봉섭이 가라사대>겉표지 ⓒ 창비

이상하다. 손홍규의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에서 나오는 그들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표제작 '봉섭이 가라사대'의 봉섭이 아버지 응삼이는 소를 닮았다. 어째서 소를 닮았는가? 오랫동안 소와 생활해서 그런 것인가?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소싸움꾼으로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런 이유로 소와 구분이 안 된다는 건 이치에 안 맞는다.

 

더 이상한 건 주변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소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응삼이의 아들 봉섭이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를 보는 장면에서 "쓸쓸하게 타박타박 걷는 황소 한 마리가 보였다"고 표현한다. 그래놓고 생각한다는 것이 "제에길, 저게 사람인지 손지"다.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뱀이 눈을 뜬다'의 그들도 그렇다. "그의 몸에는 뱀이 산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의 그들 또한 이상하기는 매한가지다. 뱀이 어디에 사는가하면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시작으로 성기가 있어야 할 곳에 대가리를 내밀고 있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 남자가 만난 어느 여자는 어떤가? 꼬리뼈가 있다.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어쩌면 징그럽다고 할 수도 있을 법한데 손홍규는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게 만든다. 애처롭다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진 풍파 때문에 그리됐기 때문이다. 소설 속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현상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저항해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 만든 세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것에 대놓고 저항은 못하지만 말이다.

 

이런 안쓰러움이 덕지덕지 묻어난 이 소설집에는 도발적인 것도 군데군데 묻어나 있다. '상식적인 시절'은 윤간 당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여성이 윤간 당했다면, 이 세상 상식으로 본다면, 그것이 결코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성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왜 그런가?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볼지는 두말 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런데 '상식적인 시절'의 주인공 아영은 달랐다. '걸레'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것은 떠난 다음에 전설이 될 정도로 화려한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돌아오더니 '걸레'라는 상호의 포장마차를 차린다. 그곳으로 기이할 정도로 많은 남성들이 찾아가는데 그 꼴이 가관이다. 걸레라고 부르면서도 걸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꼴이니 오죽하겠는가.

 

'걸레'라 불린 여자, 복잡한 세상을 농락하다

 

아영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걸레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 피해자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드는 그 복잡스러운 세상을 농락하는 것이다. 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던 종교계까지 단번에 지옥 맛을 보게 했을 정도로 그녀의 수는 놀라웠고 또한 대단했다. 이 사회의 많은 것들이 걸레라고 부르던 것에 쓸려버린 것이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세 개의 소설(최후의 테러리스트, 최초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들)은 어떤가. 이 소설들의 첫 시작은 광주와 닿아있다. 그곳에서 아들을 잃은 가족들. 그런데 그들은 나라로부터 돈을 받는다. 아들의 목숨과 명예를 판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는가. 남은 가족들은 왜 그 돈을 탐내는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총을 든 것은 무엇인가. 총이 있어도 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용기는 어디에 숨겨둔 것인가. 소설은 가슴 속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끊임없이 말이다.

 

이상하다. 손홍규의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를 지나다 보면 '사람'이 무엇인지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끝에 다다를수록 생각할 것들이 쌓여만 간다. 소설이 끝나도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소설이 건네는 말이 모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 속의 말처럼 "어쩌면 소설은 처음부터 진리를 담는 그릇 같은 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손홍규 덕분에 오랜만에 진지한 소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2008.04.26 11:10ⓒ 2008 OhmyNews

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창비, 2008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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