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쇄신안, 이것으로 충분한가?

[주장] 꼼꼼히 따져보면 그리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등록 2008.04.22 14:53수정 2008.04.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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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포함한 쇄신안을 발표했군요.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리를 일으킨 점에 대한 사과도 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발표내용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는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 언론이 모두 삼성의 발표내용을 찬양하는 기사로 도배를 할 가능성이 높지만 사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리 충격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일가의 퇴진

 

이건희 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을 비롯한 그룹내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합니다. 우리의 재벌역사상 매우 이례적이며 충격적인 조치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회장으로서 법적지위를 내놓는 것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간에는 총수가 스스로 지배력의 행사를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질 테지만 사실상 그룹은 여전히 이건희 회장일가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분과 순환출자를 통해서 여전히 지배력은 유지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부인 홍라희씨의 경우 미술관장의 자리나 문화재단의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그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바뀌지 않았는데 직함을 버린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아들인 이재용씨도 어려운 해외부문에서 일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큰 장애가 될 일은 아닙니다. 지분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삼성의 지배력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전체로 봐서 지분율이 적지만 순환출자등에 의한 지배력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입니다. 의미가 있다면 누군가 전문경영인에 의하여 각 계열사가 경영될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하지만 경영자는 누구라도 지배력을 가진 지배주주의 의중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배주주의 이익에 종사하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차후에 책임경영론을 내세우며 복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주식회사의 지배는 법적인 대표이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표이사를 선임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가진 지배주주가 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매우 충격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퇴진은 그리 중대한 변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전략기획실의 해체

 

삼성은 또 그동안의 모든 문제를 맡아서 저지른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하였습니다. 과거의 비서실에서, 구조본으로, 다시 전략시획실로 변화하며 그룹전체를 쥐락펴락하던 문제의 산실입니다. 총수의 의도에 따라서 각 계열사를 지휘하는 실질적 경영체입니다. 이 것을 해체한다는 것은 그룹을 하나의 기업처럼 묶어서 총수의 이해를 관철하는 방식의 경영을 이제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략기획실을 대체할 새로운 조직이 다시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규모가 작아지겠지만 그렇다고 그 힘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총수의 이해를 대변할 조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입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큰 틀에서만 조정을 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조직이 다시 커지고 비대해질 가능성은 여전합니다.

 

각 계열사의 경영진이 완벽하게 총수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사건건 총수의 승락을 받아서 경영하는 수준은 벗어날 테지만 계열사의 완전한 독립경영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국 그룹해체와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전략기획실은 다른 모습으로 존치하게 될 것입니다.

 

은행업 진출의사가 없다는 선언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우리사회의 염려를 반영한 선언으로 보입니다. 사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경우 우리사회가 치러야할 비용은 계산조차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종속적 지위에 존재할 경우 해당 기업군의 이해에 따라서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문제점은 고스란히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할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다른 금융기업을 그룹내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그리고 삼성화재가 모두 그룹내 금융기업입니다. 물론 은행업과 업역이 좀 다르긴 하지만 금융자본의 속성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크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은행을 삼성이 인수한다 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외환위기로 공적자금이 투여된 은행들을 누군가 인수해야 한다면 삼성정도의 자금력을 가진 곳만 가능할 것입니다.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선언이 박수갈채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삼성의 근원적인 잘못

 

지금 삼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삼성이 발표한 쇄신안과 같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을 내놓았어야 합니다. 경영권을 편법으로 상속하는 행위, 정치권력을 돈으로 지배하려던 여러차례의 시도, 불과 3%에 불과한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했던 지배구조의 문제, 유명 법조인을 싹쓸이해서 돈으로 불법행위에 종사하게 만든 일, 노조를 파괴하고 설립을 방해한 불법행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관행등을 탈피하는 방안을 강구했어야 합니다.

 

첫째, 증여세를 대부분 합법적으로 납부하고 극히 일부분에서 세금을 탈루한 것이 아닙니다. 거의 통채로 집어삼키려다 탈이 난 것입니다. 그동안 전략기획실에서 수 많은 전문가를 채용하고 100억대 연봉을 지급하며 방법을 연구한 성과일 것입니다. 그런 불법행위를 위해 채용한 자들을 모두 퇴진시켜야 마땅한 일입니다. 조금의 성의라도 보여서 증여세를 납부한 실적이 있었다면 국민여론도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드어간 비용정도만 세금으로 냈어도 사태가 이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진솔한 반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둘째, 불법자금을 동원해서 정치권력을 매수하고 그들을 입맛에 맞게 조정한 것을 진심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여러차례 불법로비로 조사를 받고 그 때마다 반성한다고 했지만 최근까지 계속된 것은 신뢰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철저히 시장의 원리에 기반하여 경쟁하고 법을 준수하며 경영했어야 합니다. 향후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이 없습니다. 재벌이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셋째, 그룹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순환출자 등의 방법으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해온 것에 대하여 진지한 반성이 없습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않고는 계열사의 독립경영은 말의 성찬에 불과합니다. 각 계열사의 지분을 취득하여 직접 지배하거나 아니면 일부는 경영권 자체를 포기하는 수준으로 개혁안을 구상했어야 합니다. 그것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구상과 장기적 플랜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넷째, 힘있고 권력과 선을 댈 수 있는 유명 법조인 싹쓸이를 반성해야 합니다. 불법을 동기로 채용된 자들을 모두 해고해야 합니다. 기업에 법조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로비에 동원돼고, 정치권력을 조정하며, 중소기업의 특허를 빼앗는 행위까지 하도록 두고 쇄신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섯째, 무노조의 원칙에 대한 반성도 필요합니다. 삼성이 노사협력을 너무 잘해서 저절로 노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를 압박하고 탄압하는 방법으로 방해공작을 진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분명 노조결성은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입니다. 최소한 노동삼권은 보장되는 기업이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이 시대에 맞지않는 무노조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여섯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소득물인 비정규직을 양산해선 안될 일입니다. 비정규직이 우리사회의 양극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임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그 혜택을 누리려고 들어선 안될 것입니다. 과거처럼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잘 훈련하고 키우는 산실의 역할도 다시 맡아야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충분히 훈련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데려다 쓰고 버리는 고용관행을 고칠 때가 되었습니다. 노동자의 소득은 곧 삼성 고객의 소득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내수경기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야 마땅할 것입니다.

 

물론 삼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과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온국민이 삼성에 보내준 애정을 생각하면 삼성도 국민에게 그 정도의 모습은 보여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처벌을 피하며 면피성 쇄신안을 발표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이제 총수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하는 삼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GDP의 20%를 담당하는 삼성이 비중만큼 사회에 기여하려는 노력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삼성의 이익이 곧 대한민국의 이익이라는 정도의 국민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은 삼성의 종업원과 소비자만 되라는 법이 없습니다. 잘하면 삼성의 응원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삼성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4.22 14:5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삼성특검 #이건희일가 #전략기획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글로벌 그탠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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