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다시 통합했다. 그렇게 다시 모인 현재 통합민주당은 무엇인가. 서로 동상이몽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잠시 침묵)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시비해선 안 된다. 그 전제 아래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제발 도로 열린우리당이니, 도로 민주당이니 하는 소리 안 했으면 좋겠다. 분열로 인한 폐단으로 정당으로서는 풍비박산이 났었고, 한나라당엔 고스란히 반사이익을 줬다.
한나라당이 뭐라고 하나. 10년 동안 이룬 성과가 있는데,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그 10년이 앞으로 나라를 위한 자양분이 되게 하려면, 비록 정권은 못 잡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과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야당다운 야당, 한나라당과 선명한 차별성 지니는 야당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조순형 의원은 자유선진당으로 갔다. 소감은?
"그런 부분은 가급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웃음) 개인 인격에 대한 이야기는 국민이 평가할 것이고, 선거로 평가 받은 분도 있으니 내가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는 자신에게 커다란 정치적 시련을 안겨준 2003년의 선택에 대해 "또다시 그 상황이 와도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새삼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날을 시비해선 안 된다"는 것이 현재 그의 입장이었다.
"당권 도전? 헌신할 때와 기회가 온다면 헌신할 각오는 돼있다"
이야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앞서 그가 총선결과에 대해 평가하면서 '야당다운 야당, 선명한 야당'을 강조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현 민주당 노선에 대한 '불만'이 은연중에 배어나온 것이다.
- 손학규 대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대통령후보 경선 때부터 보면 손 대표에 대해 가혹하게 평가하던데.
"가혹하게 말한 적 없다. 다만 한나라당과의 차별성, 당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당시 손 전 지사가) 그것에 어떻게 부합하는 건지 스스로 설명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교황선출방식이라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방법으로 당 대표를 맡았는데, '전당대회가 당원들에게 당 정체성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라는 지적을 한 것이다."
- 그 정체성 문제가 충분히 설명됐다고 보나.
"이번 총선을 통해 평가된 것 아닌가."
- 민주당이 81석을 건진 것은 나름대로 '선전'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81석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심의 바로미터(잣대)라 할 수 있는 서울 47개 선거구 중 겨우 7곳에서만 이겼다. 야당다운 야당이 있을 때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던 지역에서 참패했다. 이건 선거 참패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정확히 진단해야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이 나오기 때문이지, 무언가 의도가 깔린 건 아니다."
- 야당다운 야당이 아니었다는 말인데, 손 대표의 리더십에서 어떤 점이 그랬다고 보는가.
"당 대표의 리더십뿐 아니라 정책, 노선, 인물의 상징성을 모두 포함해서 봐야 한다."
- 정책 부문을 예로 들어 말한다면.
"아직 원외 인사다. 정치 전면에서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정책의 구체적인 부분을 들고 나와 '이렇게 하지 않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대안을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다."
- 6월에 전당대회가 열린다. 민주당 지도체제가 어떻게 형성돼야 한다고 보나.
"도로 열린우리당, 도로 민주당이니 하는 시시비비를 지양하고, 당내 화학적 결합을 조속히 만들어내서 그 중심 위에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구축해내는 것, 한나라당과 뚜렷한 차별성, 선명성을 보일 수 있는 인물, 정책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생각은?
"지금은 개인 입장 피력하고 싶지 않다. 이 시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정치는 어느 위치에 있으나 힘들고 어렵고 어깨가 무거운 것이다. 남의 집안 평가하듯이 논평하는 것으로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헌신할 때와 기회가 온다면 헌신할 각오는 돼 있다. 그러나 지금 마치 자리 욕심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 동안) 그렇게 해오지도 않았다."
-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이 보이나.
"정치는 항상 '나뿐이다' 할 때 아집으로 변한다. 그에 대해선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 잠재적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엔 박근혜 전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의원 등이 있는데 비해 민주당 후보들은 상당히 불리한 게 사실이다. 당내에서 어떤 인물을 키워내야 한다고 보나.
"(웃음) 여당이라고 반드시 인물을 잘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야당일 때 오히려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돌파하면서 안정적으로 국민 신뢰를 쌓아간다면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인물이 커갈 수 있다. 현재 국면에서야 여당에 더 인물이 많아 보이지만. 위기에 빠진 야당에 기여하고 국민 신뢰를 쌓아가는 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국정을 이끄는 최고의 리더십은 혜성처럼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본다. 건전한 정치 토양에서 자기를 연마하는 인내심과 열정과 정치적으로 불리할 때도 묵묵히 한 길을 걸으며 소신, 원칙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의 운명을 저 사람에게 맡길만하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면 (자리는) 자연스럽게 오는 것 아니겠나. 미리부터 '원한다, 그게 꿈이다'라고 할 필요 있겠나."
"대운하? 논쟁에 말려들지 말고, 21세기 경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는 18대 총선 결과를 '참패'라고 규정,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현 민주당 지도체제와 분명한 각을 세웠다. 당권 도전 계획에 대해 즉답은 피하면서도 "헌신할 때와 기회가 온다면 각오는 돼있다"고 말해 굳이 '욕심'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민주당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을 세워두고 있을까.
- 민주당 내에는 '실용·선진'을 놓고 이명박 정부와 경쟁해야 한다는 입장과 진보 쪽의 가치로 대항해야 한다는 대립되는 두 입장이 있는 것 같다. 추 당선자는 어느 쪽인가.
"항상 논쟁엔 먼저 던지는 쪽의 의도가 있는 거다. 그것에 대해 반사적으로 대꾸하면, 그걸 주도해 나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경제건, 안보건 내가 먹고 사는 문제, 내가 평화롭게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민심을 가장 정확히 꼬집어내서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게 수권정당이 갖춰야 할 능력이다.
야당다운 야당을 재건하자는 것도 차후에 대안야당, 수권정당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다. 한나라당과 뚜렷한 차별성, 선명성을 지적한 것은 그냥 비판만 하는 야당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대운하 프로젝트 같은 걸 끄집어내서, 국민들은 그것이 먹고 사는 민생인 것처럼 현혹돼 있는 상태다, 그러면 21세기 경제 대안을 내놓아야지, 대운하 논쟁을 벌여선 안 된다. 그건 학자들, 전문가들이 이미 하고 있다. 정치인이 괜히 그거 다 자기 말인 양 번역해서 반대해봐야 국민은 답답하다."
-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추구한 가치 중 버리고 수정해야 할 부분은 뭐라고 보나.
"국정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데 약간 문제가 있었다. 안 해야 할 것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틀렸다기보다는 우선순위 설정에서 조금 후순위로 갈 게 선순위로 온 게 있었다. 그 다음에 방법에 있어서, 어떤 정책이든 과반의 동의는 얻어야 한다. 정책 내용뿐만 아니라 설득 수단도 잘 구사했어야 하는데 내용보다는 수단에서 좀 과격했다고 할까, 그런 면이 정책을 오해하게 만들거나 반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 정책의 핵심이 되는 철학 면에서 시정해야 할 부분은 없나.
"오히려 철학 부재, 철학 빈곤, 그런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면 평화통일 문제 같으면 평화공존을 일관성 있게 끌고 가면 되는데, 약간은 미적대거나 오락가락하면서 대외적 설득력이 낮아졌다. 어쨌든 미국을 잘 설득하고 북한을 잘 변화시킬 수 있다면 성공하는 건데 오히려 때로는 그런 자기논리의 철학적 빈곤, 부재 등으로 인해 제대로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해 협공 당하는 상태가 간혹 있었다."
-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이번 방미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어떻게 보나.
"외교안보 분야는 특히 보수 쪽으로 너무 경도되지 않았나 싶다. 민생 문제 같은 경우 누가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 외교 문제에서는 너무 콤플렉스가 많다. 스스로 자기 철학 정립하지 못한 채 무조건 지난 정권을 폄훼하는 식이다. '이명박 정권의 평화통일정책은 뭐다' 하는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난 정권과 차별성뿐이라는 거다. 뭔가가 있어야 미국도 설득하고 북한도 변화시키고 하는 건데. 지금 잘못하면 국익을 손상시킬 만큼 철학 부재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했을 때…. 고유가 시대에 환율도 불안정하다. 각국이 수출에 주력하던 힘들을 오히려 내수 쪽에 많이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업 해결하고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내수 시장을 키워야 하는데, 한미FTA로 그다지 얻어내는 게 없지 않나.
이걸 자유무역주의냐 아니냐 하는 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외교에서는 실리를 챙긴 게 별로 없다. 한미FTA 하면 경쟁력 좋아지고 서비스 시장이 활기를 찾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있는데, 각론으로 가면 아닐 수 있다.
단답형으로 FTA 찬성, 반대를 물었을 때는 한 번도 답한 적 없다. 협상 기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짧았다. 미국의 한시적인 TPA(무역촉진권한법) 때문에 서두른 감이 있는데, 이제 그 기간은 지났다. 다시 국회 열렸을 때 느긋하게 검토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 어떤 실리가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었다"
추미애 당선자의 홈페이지에는 가정 형편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그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말로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격언이 적혀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 다시 일어선 것을 실감하는가.
"어떤 날은, 이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었다. 아침은 활기차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 내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고 내면화하고 내 몸을 일으키는 게 참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말은 참 쉬우나 (웃음) 실천은 참 어렵다는 걸 나 자신이 아주 잘 안다.
긴 터널을 뚫고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다시 씩씩하게 해야 되겠다는 굳은 결의, 또 '새로운 희망, 대안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고. 그런 약속을 대놓고 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선동이다. 남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하니 헌신과 열정을 다하겠다."
- 민주당을 이끌어온 인물들이 대부분 낙선했다.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어떤 집단에서 쇠퇴하는 기와 상승하는 기를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 아닌가. 귀국 후 정치 상황, 특히 내가 지지하는 쪽을 장외에서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순간순간이 참 많았다. 그러면서 차츰 쇠퇴하는 게 보였다. '다음 총선 정말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가 주뼛하면서 번뜩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얼른 밖에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터뷰 초반에 손을 내 보이면서 '가을비부터 묻어 있다'고 한 건 열심히 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 가을부터 다니면서 '민심이 내 거울이겠구나, 내 내면까지, 살아온 날까지 다 비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08.04.20 21:3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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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결과는 '참패'... 야당다운 야당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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