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질된 황기.어머니가 정선 장터에서 팔 것들이다.
강기희
황기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보리 이삭도 아니고 벼 이삭도 아닌 황기도 이삭을 줍는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뭐 먹고 살기 어려울 때야 돈이 되고 밥이 되는 일이라면 가릴 일도 아닌 것이지요.
건천리 가는 길에 만난 진달래꽃...점점홍 점점홍 다가와그러고보면 요즘이 보릿고개 시절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 패지도 않은 보리를 바라보며 나물죽으로 연명하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닙니다. 땅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산나물 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저께 저녁 정선문화연대 고문인 이도현 선생이 "강 선생, 내일 황기 이삭줍기 갈 티여?"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기 뭔데요?" 하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인 즉슨 황기를 다 캐고 난 밭에서 남은 황기를 벼 이삭 줍 듯 줍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선 오일장에 나가시는 어머니께서 요즘 팔 것도 마땅 찮은 지라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제 늦은 아침 황기 밭이 있는 건천리(정선군 동면)로 갔습니다. 차로 40여분 걸리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마을입니다. 해발 700m가 넘는 곳이라 그 흔한 개나리나 진달래 하나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랫 동네만 해도 산벚꽃을 비롯해 산수유, 목련이 꽃을 피웠지만 아침이면 아직 영하로 떨어지는 건천리에선 어떤 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건천리 가는 길에서 만난 소금강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꽃술을 활짝 연 진달래가 하도 고와서 잠시 한 눈을 팔기도 했습니다. 잠시 진달래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내 눈은 선홍빛으로 달아 올랐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진달래꽃만 보면 가슴이 후끈 달아 오릅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어떤 여인의 유혹보다도 강하게 다가 오는 것이 진달래입니다. 점점홍 점점홍 다가오는 진달래꽃을 어쩌지 못할 땐 잠시 까무라 쳐도 좋을 일입니다.
진달래꽃을 보며 아침부터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선홍빛으로 물든 눈을 하니 마치 전날 통음이라도 한 듯 혹은 색광이라도 된 듯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견디기 민망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