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씩만 낳아라, 예쁘게 키워줄랑께"

'공동 육아' 위해 머리 맞댄 젊은 할머니들

등록 2008.04.21 09:10수정 2008.04.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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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손자든, 외손자든 맞벌이 하는 자식들의 아이들을 자의 반 타의 반 맡아서 키우는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아무리 젊은 할머니들이라도 손자를 볼 나이면 오십 중후반은 넘을 터. 가만히 있어도 "여기 아파 저기 아파" 할 나이인데 어린 손자들을 돌보는 일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너 뜨거운 국물 맛을 못 봤구나"

 

언젠가 내가 우리 아들, 딸한테 "아이 셋씩만 낳아라. 엄마 아빠가 키워줄게"하고 큰소리 쳤다고 하니까 아는 선배가 깜짝 놀라며 "너 미쳤냐?"고 대뜸 혀부터 찼다.

 

"너, 뜨거운 국물 맛을 못 봐서 그렇지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직장생활은 빨간 날에 놀기라도 하지 휴일도 없는 게 아이 키우는 일이야. 우리 언니 보니까 손자 셋 키우는 동안 파파할멈이 다 됐더라. 자식들이 아예 기대를 안 하게 애시당초 나는 아이 못 본다. 못 박는 게 수라니까."

 

하긴 뜨거운 국물 맛을 못 본 건 맞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친정엄마께 양육을 떠맡기고 마음대로 활동을 한 나로선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피상적으로 느꼈을 뿐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 강도를 속속들이 알 리가 없다.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아이들을 낳았는데, 둘째 낳자마자 남편이 수배를 당하고 1년 후엔 투옥이 되었다. 기저귀 차는 딸아이와 핏덩이 아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두 아이의 양육과 남편 옥바라지를 위해선 죽으나 사나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중반 군부독재 치하의 사회상황은 그랬다. 나처럼 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남편을 만났거나 아니면 부부 모두 운동 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아이들의 양육은 부모님 차지가 되기 일쑤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업고 다니며 보험이나 어린이 책 외판 사원으로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찌 보면 지금 젊은 할머니 축에 드는 50~60대가 일하는 여성 1세대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몽땅 떠맡길 수 있는 내 경우는 그래도 행운이었다.

 

그러나 7남매 맏며느리로 들어와 시부모님 봉양과 당신 자식 사남매를 키우신 우리 엄마 고생은 말씀이 아니었다. 간신히 화장실 출입이나 하시는 시어머님을 모시는 것도 힘에 벅찰 텐데 난데없이 기저귀 찬 새끼들을 둘이나 끌고 들어 온 딸년이라니.

 

과로 때문에 화장실에서 두 번이나 졸도를 했을 정도로 고생이 극심했던 엄마에게 짐을 덜어드릴 능력이 내겐 없었다. 고작 생활비 몇 푼에 영양제 정도 사드리는 게 전부였다. 우리 아이들을 떠맡았을 때 엄마 연세가 지금의 내 나이였다.

 

함께 마련했던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집안 살림에 손자양육까지 덤터기를 쓴 우리 엄마. 그 세상이 '창살 없는 감옥'인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어차피 집에서 살림만 하시는 엄마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 연세도 그 정도면 팔팔한 나이니까 견딜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어지는 수배와 투옥의 연속 속에서도 아이들은 잘도 태어났다. 집집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한 둘은 있으니 공동대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탁아소' 설치다. 장소 마련은 독일에서 후원을 받았다.

 

그 당시 외국에선 한국의 민주화 운동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꽤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기혼여성노동자를 위한 탁아소 설치 기금을 후원받아 조그만 아파트 한 채를 전세로 얻었다.

 

그리고 한 아이 당 4만원씩이었던가? 하여튼 아주 저렴한 탁아비를 걷어 양육 교사와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아주머니 두 분의 인건비로 충당했다. 아이를 맡기기 위해 탁아소 주변으로 속속 이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탁아소가 문 닫는 시간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들의 아이는 자연스럽게 마지막으로 도착한 엄마들이 데려갔다.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이나 하루 종일 병아리처럼 엉겨 뛰노는 아이들이나 모두 한 식구처럼 정이 깊어갔던 시절, 고통 속에서도 인정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그 탁아소 출신들이 어느새 장성해 출가 할 나이가 되었다. 20년이 흘렀건 30년이 흘렀건 일하는 여성들의 아이 양육문제는 여전히 제 자리를 맴돌고 있다. 예전엔 양육문제가 소수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사항이었지만 지금은 광범위한 여성들의 당면과제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 양육문제를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니, 뭐 하는 국가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갖지 않겠다고 하는 부부들이 늘어간다고 한다. 해서 부모들도 절대로 손자는 사절이라는 부류와 닥치면 할 수 있냐며 손자를 떠안을 각오를 하는 부류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후자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이 아이는 책임질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결혼 해 아이를 낳으라고 부추길 정도다. 물에 빠져봐야 깊은 줄 아나. 아무리 아이는 키워보지 않았지만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와 내 친구들이 나서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양육문제로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우리 자식들의 고민을 부모라도 나서서 도와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다.

 

젊은 할머니들 머리를 맞대다

 

그래서 미래의 '젊은 할머니'들이 머리를 맞댔다. 우리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탁아소 운영을 했던 것처럼 손자들 육아도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취지다. 서울에서는 재산이 있는 어떤 언니가 장소를 내놓겠다고 했다.

 

탁아소 선생은 물론 우리 젊은 할머니들. 당번과 역할을 정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자는 이야기다. 애기들 비위 맞추는데 서툰 나 같은 성격은 부엌에서 아이들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식으로 말이다.

 

꼭 필요한 사회활동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손자들을 돌보는 방법, 보통 좋은 일이 아니다. 제 아이들 맡기면서 공짜로 개기진 않을 테니까 자식들이 내놓는 돈으로 우리 용돈도 할 수 있고 또 일부는 손자들 교육에 재투자할 수도 있고. 젊은 할머니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아이들 교육은 물론 인성교육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골(전남 담양)에서도 삼삼오오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제 아이를 직접 키우지 못한 후배나 농민운동을 하느라 아이들을 방목하다시피 버려두고 다녔던 또 한 후배가 가장 적극적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으로 손주를 봐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조그맣게라도 실천을 시작해볼 참이다.

 

넓은 텃밭과 꽃밭이 어우러진 시골집이 있으니 장소 걱정은 할 일이 없다. 양육 교사인 젊은 할머니들 내공 또한 만만치 않으니 교육과 인성 모두 문제가 없겠다. 다만 걸리는 한 가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제 어미 아비들이 새끼들 얼굴을 매일 못 보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래도 내로라하는 부자들도 자식들 교육 생각해 조기 유학이다 어쩐다 난리를 하는데 서너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내 나라 그것도 부모 있는 고향 집인데 그 정도 불편을 감수 못하랴.

 

노령인구가 많아지니까 사방에 생기는 것이 노인 요양 시설이다. 육아문제로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젊은이들 때문에 인구감소가 팍팍 진행되는데 국가가 뭔 배짱으로 언제까지 손 놓고 있겠는가. 국가가 육아문제를 해결 할 때까지 우리가 먼저 나서겠다. 성질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느려터진 국가 믿다간 생전에 손자 구경 못 하겠다.

 

"아들, 딸들아 엄마 아빠가 있다. 걱정 말고 토끼 같은 손자 안겨다오. 우리가 예쁘게 키워 줄랑께."

2008.04.21 09:10ⓒ 2008 OhmyNews
#육아문제 #손자키우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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