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무소 뜰엔 5-6월이나 되어야 피어나는 금낭화가 벌써 피어나 있다. '며느리주머니'란 재미있는 별칭을 가진 꽃이다. 현대말로 옮기자면 '며느리 비자금 주머니'쯤 되지 않을까. 며느리가 가진 부의 척도이기라도 하듯 주머니가 많이 달릴수록 더욱 화려한 맵시를 뽐낸다.
그 아래엔 수선화가 피어 있다. 수선화의 속명은 '나르시소스'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물 속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다는 게 나르시소스의 전설이다. 그래서 꽃말도 '자기애'이다. 자기애 혹은 왕자병을 가진 사람에겐 자기를 낮추는 하심(下心)이 없다. 어쩌면 절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가장 멀리 해야 하는 꽃이 아닐까 싶다.
대웅전과 산운각을 둘러보고 나서 암자를 나서려는데 아까 그 스님이 손짓해 부른다. 다가가니, 바나나와 사탕 따위를 듬뿍 안겨준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아 배낭에 넣는다.
실례를 무릅쓰고 법명을 물었더니 지혜 스님이라고 알려준다. 마곡사에서 득도한 지 이십 년이 넘었다고 한다. 금용암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되면 알려주려고 "혹시 인터넷을 할 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만 사방을 살피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한다. "난 할 줄 안다"고. 아마도 암자의 큰 스님이 인터넷 하는 걸 싫어하시나 보다.
어쨌든 스님의 수줍음이 참 보기 좋다. 자기를 낮추는 하심 속엔 저런 수줍음도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묘하게 하심을 가장한 교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큰 절에 가면 저런 하심을 지닌 스님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전각이 커지면 마음이 덩달아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의 맹점인지도 모른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규모에 맞는 살림 살이를 꾸려야 하는 건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신원사에 다 왔다.
가만 있자. 내가 그 무겁던 비애를 어디쯤에다 내려놓고 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