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먹음직스러운 쑥떡. 고소한 콩냄새가 좋아서 그런지, 조연인 콩고물이 주연인 쑥떡을 압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종안
오늘도 가까운 가게 놔두고 왕복 1시간 거리인 구포시장에 다녀온 걸 보면, 이제는 장 보는 날이 운동하는 날이 됐습니다. 한 때는 산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아했던 등산이 길거리 산책으로 바뀐 것이지요.
상추와 대파를 1천 원어치씩 사들고 덕천 로터리 지하도를 빠져나오는데 허름한 행색의 아주머니 한 분이 나무로 된 떡판에 노란 콩고물을 뿌린 쑥떡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콩떡을 올려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쑥떡이랑 콩떡 사이소! 집이서 맹근 떡이라 참말로 맛있습니더··· 아자씨! 맛있는 쑥떡 하나 사다 잡숴보이소···."
아주머니와 눈빛도 마주쳤지만, 향긋한 쑥 냄새와 고소한 콩가루 냄새가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봄 소풍을 가거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거운 떡시루를 머리에 이고, 우리를 따라다니셨던 떡장수 아주머니가 생각나더군요.
황토물이 들어 노랗게 변한 고무신에, 땀으로 범벅이 된 적삼을 입은 떡장수 아주머니, 차림은 비록 옹색했지만, 언변이 대단하고 인상도 좋아 많은 친구들이 떡을 사먹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아 4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교 뒷산 넘어 수원지로 소풍 갔을 때, 보물찾기를 그만두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주머니에게 떡을 사먹으며 웃고 떠들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말을 걸었습니다.
"맛있게 생겼네요. 하나에 얼마씩 하나요?""쑥떡 말입니꺼? 천원에 네 개고, 이천 원에는 하나 더 엉겨서 아홉 개 줍니다. 집이서 맹근 것이라 맛있으니 잡숴보이소···"옆에서 쑥떡을 맛있게 먹던 젊은 아주머니가, 자기도 맛있게 보여서 사먹고 있다며 거들더라고요. '아무리 값싼 물건도 거간꾼이 있어야 거래에 흥이 난다'라는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겨울밤에 찹쌀떡을 사다 먹으며 '형수님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단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던 어머니 얼굴이 시나브로 떠올랐습니다. 며칠 동안 군것질을 하지 않아 입이 심심하던 차이고, 그냥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워 2원어치만 달라고 했더니 비닐봉지에 아홉 개를 넣어주더군요.
향긋한 쑥향이 그만인 쑥떡은 평소 가공식품을 멀리 해온 저에게 찹쌀떡과 함께 다시없는 군것질거리입니다. 집에 와서 4개를 먹고 나니까 '4천 원어치를 사가지고 올 것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가 되더라고요.
졸깃졸깃하고 달콤한 팥소가 들어간 찹쌀떡은 돌아가신 어머니도 좋아하셨기 때문인지 이런저런 추억들이 눈앞을 스쳐가네요. 해서 오늘은 어머니와 찹쌀떡을 사다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30년 전 그날 밤을 그리며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추억여행을 할 수 있는 티켓을 2천 원에 구입한 것 같기도 하고, 쑥떡장수 아주머니가 아내와 떨어져 외롭게 지낸다며 선물한 것 같기도 하고··· 도통 헷갈립니다. 아무튼, 짧지만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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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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