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이상한 계산법을 뜯어 고치려면

[기고 - 이랜드 파업 300일] 자본주의에 도구적 합리성을 허하라

등록 2008.04.16 14:49수정 2008.04.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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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은 이랜드 노조의 파업 30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해 여름 뜨거웠던 이들의 투쟁은 어느덧 언론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랜드 사태도, 비정규직 문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논객 한윤형씨가 이랜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타고 온 이동차량에 이랜드 불매운동을 선전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타고 온 이동차량에 이랜드 불매운동을 선전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이 타고 온 이동차량에 이랜드 불매운동을 선전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랜드 그룹은 지난 2007년 7월 노조의 홈에버 점거 농성 당시, 총 매출 피해액이 200억 원이나 된다고 주장하였다. 노조의 투쟁이 계속될수록 그 피해는 점점 더 누적되어 갔을 텐데도 그들은 결단코 노조를 상대로 한 투쟁을 중단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랜드 그룹에 해직 노동자들의 억울함이나 인간적인 사정을 말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자본주의적인 합리성을 얘기할 수는 있는 걸까? 그들이 적어도 이윤 추구의 합리성을 따르고 있다면, 논리적 가능성은 두 가지다.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수백억 원을 상회하는 손실이 생기거나, 아니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언론에 대고 거짓말을 했거나.

 

정말 그들은 산수를 잘못했거나 거짓말쟁이였던 것일까? 파업 당시 이랜드의 매장들은 동종업계에서도 유난히 매출액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자본주의의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성경에 없기 때문에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는 박성수 회장의 말을 단초로 생각해 보자. 어쩌면 그들에게 노조를 상대로 한 '전쟁'은 이윤 추구를 넘어 신념에 찬 행동일지도 모른다.

 

십일조로 교회에 130억원을 기부했다는 얘기는 사측에서 부인하고 있으니 생략하더라도, 이랜드가 기독교를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는 '믿음의 기업'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신자들이 더 쉽게 입사할 수 있었던 그 기업이다.

 

그런데 그 믿음을 사원들과 공유한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직원들에게 술, 담배를 금지했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도 삼겹살을 먹을 때는 콜라를, 회를 먹을 때는 사이다를 마셨다고 한다. 낮은 임금에 대한 불평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감싸 안았다고 한다.

 

믿음의 기업의 식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 안정성이었을 텐데, 그것만 빼고는 모든 것을 다 제공했다. 그런 순수한(?) 신앙에 노조는 사탄이라는 신념이 포개져 있었다면, 결단코 노조와 타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화기, 손도끼, 죽봉, 얼린 생수통 등 탄압의 신기원을 이루어 지난 1년 동안 진기하고 참혹한 동영상을 많이 만들어줬던 사정도 설명은 된다.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항의서한을 풍선에 달아 날려보내고 있다.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항의서한을 풍선에 달아 날려보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랜드·뉴코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차도를 점거한 채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항의서한을 풍선에 달아 날려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광범위한 지지와 불매 운동에도 이랜드는 강경한 대응만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한 집단이므로 다른 사회적 의무를 전가하지 말라고 틈만 나면 얘기하는 것이 한국의 기업들인데, 곰곰이 상황을 따져보면 그들 스스로 이윤 추구에 열심인 것 같지는 않다.

 

할 일 없이 직원들의 사생활에나 간섭하고, 경영자의 위치를 고용주를 넘어선 가부장으로, 일종의 제사장으로 승격시킨다. 종교적 권위로 직원을 억압하며 이윤을 추구하지만, 그 권위에 도전하면 이윤에 대한 계산을 떠나서 철저하게 억누르려 든다. 이때쯤의 그들은 이미 눈깔이 뒤집혀 어떤 계산도 불가능하다.

 

종교와는 관련이 없는 듯한 기업들도 이러한 세태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한다. 가령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보라. 사원들에게 지출되는 10만원도 아까워하는 자본주의적 감수성을 지녔지만, 아들인 이재용 전무가 수백억 원을 말아 먹어도 '경영 수업'의 일환이라며 통 크게 용서한다.

 

초법적 권력의 부자 승계에 대한 야망이 이윤추구의 합리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아들의 폭행범에게 폭력의 매운 맛을 보여준 한화 김승연 회장은 차라리 소박한 멋이라도 있다. 기업이 스스로 기업 본연의 영역을 이탈하고 있는데, 비판자들에게 무엇을 강변한단 말인가.

 

'비정규직 보호법' 폐해의 상징이 되어 버린 '이랜드 사태'다. 법이 통과되자마자 700여명의 비정규직을 임용직으로 바꾸어버린 이랜드의 기민함은 이 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우원식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의 주장을 조롱했다.

 

1년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건만, 여전히 사태 해결은 난망하다. 일반적인 파업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불매운동마저 일어났건만, 그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풍문으론 이랜드 경영진이 노조와 타협하는 방안을 고려하다가 박성수 회장과 같은 소망교회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섰다는 얘기조차 들려온다. 신앙의 패거리에게 자본주의의 쓴맛을 보여주려면 불매 운동밖에 답이 없을 것이다. 오래된 격언처럼,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2008.04.16 14:49ⓒ 2008 OhmyNews
#이랜드 #이랜드 사태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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