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신부의 반가운 인사와 한국말

그들 부부가 행복한 결혼생활를 하길 비랐습니다

등록 2008.04.12 19:38수정 2008.04.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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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간이 나서 머리를 깎기 위해 단골 이발소에 갔습니다. 걸어가면서 한 달 전에 결혼한 이발사 영수(가명)씨와 캄보디아 신부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결혼식을 많이 다녔지만 외국인과 결혼하는 결혼식에는 처음 참석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영수씨는 올해 36세입니다. 작년 늦가을에 캄보디아에 가서 그 곳 여자와 혼인을 하고 함께 돌아왔습니다. 내가 그녀를 본 것은 이곳에 온 지 한 달 지나서 이발하러 갔을 때입니다. 처음엔 일하는 여자를 구했나 했는데 그가 자기 아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는 21세인데 정말 보기에도 앳돼 보였습니다.

 

그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에 갔을 때 영수씨는 이발소 의자 앞 거울 곁에 청첩장을 꽂아놨습니다. 그리고 큰 종이에 자신의 결혼을 축하해 달라며 날짜와 장소를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습니다. 당장 한 장을 뽑아서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수첩에 잘 적어놨습니다.

 

그는 캄보디아에 가서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혼인은 했지만 이곳에서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 어른과 친지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결혼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사정 때문에 이번 결혼식에 캄보디아에서는 아무도 오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수씨보다도 그녀가 퍽 쓸쓸했을 것입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인지 그녀는 자주 감기에 걸렸습니다. 추운 이곳 날씨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발소에 가면 소파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잠을 자거나 점퍼로 몸을 덮고 남편의 일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발을 하며 영수씨와 주로 나눈 대화는 한국말 배우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저녁에 시간이 되니 가끔 한글 가르쳐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는 매우 고마워하며 다행히 구청에서 일 주일에 두 번씩 집에 찾아와서 지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도 일이 끝난 다음에 기초적인 것은 가르치고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배우는지 기특하다고 아내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전의 일입니다. 그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가 결혼식 주례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예식장에 위임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곳에서 알아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깎으며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해야 된다고 그에게 말하며 이 곳 단골이며 내가 잘 아는 사람을 그에게 추천했습니다.

 

자운(가명)씨가 그 주인공인데 연세도 예순으로 지긋한데다가 예전에 대기업 부장까지 하고 지금은 동네에서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를 추천하니 영수씨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띠며 그렇게만 되면 참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운씨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중히 부탁하면 꼭 들어주실 분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영수씨와 주례자 정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신혼여행지 정하는 것으로 주제를 옮겼습니다. 제주도가 나왔습니다. 설악산이 나왔습니다. 나는 처가가 있는 캄보디아를 말했습니다. 그는 애가 뱃속에 있으니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은 무리라고 했습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차로 가까운 설악산에 바람 쐬러 간다고 했습니다.

 

주례자 선정에 관한 나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이틀 후 영수씨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자운씨가 주례 요청을 들어주셨다며 정말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치 내가 결혼할 때에 주례자를 정한 것처럼 무척 기뻤습니다. 아내에게도 그 소식을 전하며 결혼식에 꼭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들 부부가 결혼식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깨끗한 옷을 입고 축하해주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도 인상이 참 좋지만 신부인 그녀는 더욱 예뻤습니다. 친정 부모 대신 신랑의 친척 두 분이 부모 역할을 대신 했습니다. 웅변이 특기인 주례자 자운씨는 짧지만 인상 깊은 주례사를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겠지만 특히 아내가 한국말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남편도 최소한 기본적인 캄보디아 말을 배워서 아내와 대화는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좋은 주례사를 그녀는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려니 그것이 퍽 안타까웠습니다.

 

그녀는 양가 부모에게 큰 절을 할 때에 남편을 따라서 남자 절을 해서 하객들이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겠지만 그녀는 남편을 따라서 함께 입장하고 함께 퇴장하며 결혼식을 무사히 잘 끝냈습니다. 우리는 설악산으로 행복한 신혼여행을 잘 다녀오라는 말을 그들 부부에게 전하고 식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한 달 만에 영수씨 부부를 만났습니다. 손님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손님들 면도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기도 했습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동안 몇 번 봤다고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공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나에게 “커피 드시겠어요?” 하며 밝은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신기하고 대견스러운지 몰랐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 한국말을 잘 하시네요” 하고 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의 그 말을 그녀가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기분은 그 순간 최고로 좋았습니다. 영수씨도 그런 아내를 행복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녀가 요즈음도 열심히 한국말을 배운다고 하니 다음에 가면 더 잘 할 것입니다. 영수씨도 캄보디아 말을 조금씩 공부한다고 하니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를 위해 컴퓨터로 캄보디아 방송을 틀어준다고 하니 그는 1등 남편임이 틀림없습니다. 머리를 깎으면서도 그들 부부가 깨소금이 쏟아지게 잘 살아나가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2008.04.12 19:38ⓒ 2008 OhmyNews
#유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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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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