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마루집현전 한쪽 골마루는 가운데에 아주 얕게 책을 깔아 놓고 두 벽으로 책이 마주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최종규
오늘도 여러 장사꾼을 보고 여러 전도꾼을 만납니다. 전철 장사꾼 물건은 으레 똑같고, 전도꾼 이야기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문득, 똑같이 전철에서 장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좀더 나은 쪽으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디장사도 나쁘지 않지만, 값싸고 작은 책을 들고 와서 팔아 볼 수 있을 테고, 하느님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보다는, 성경에 적힌 좋은 글월을 한두 대목 읽어 주는 편이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차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라면 짧은 동안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만 마음을 쓰지 말고, 자기가 이웃하고 무엇을 더 나눌 수 있을까에도 마음을 쓰면 어떻겠느냐 싶어요.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탑니다. 갈아탄 3호선 전철 에어컨 냄새 때문에 골이 띵합니다. 땅밑으로 달리는 전철에서는 창문을 열 수 없습니다. 매캐한 먼지만 마셔야 하니까요. 드문드문 밖에서 달리면서 역에 설 때면, 바깥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쐬며 한숨을 돌립니다. 그러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사이에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원당역에서 내립니다. 마침 원당역 앞에는 헌책방 한 곳이 있습니다. 숨도 돌리고 머리도 쉬고 마음도 다스릴 만한 책을 구경해야겠습니다. 6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뀐 곳 앞을 지나면 풀빛으로 된 책방 간판 '집현전' 세 글자가 큼직하게 눈에 뜨입니다.
(2) 책
문간에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인사를 드리고 골마루를 둘러봅니다. 사티쉬 쿠마르님이 당신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길을 걷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쓴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 사티쉬 쿠마르, 한민사, 1997)라는 책이 보입니다. 사티쉬 쿠마르님은 어려서 자이나교 스님이 되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당신이 마음과 몸을 바친 종교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비판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다시 사회로 돌아옵니다.
... 다음날 아침 구루는 내게 말했습니다. "오,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는 이여, 그대 이제 승려가 되었으니 걸을 때는 반드시 앞을 자세히 살펴,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명도 밟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고 앉거나 누울 때는 반드시 바닥을 부드럽게 쓸어내어 하나의 생명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고, 언제나 상냥하고 절도 있게 말하도록 하여라. 그대는 정해진 주거지를 가져서도 안 되고, 한 번에 30야드 이상의 옷감을 몸에 걸쳐서도 안 된다. 방석이나 이불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 밤에는 물이나 음식, 약도 먹어서는 안 된다. 낮잠을 자서는 안 되며, 여행을 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걸어다녀야 한다.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짐은 스스로 짊어지고 다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면도칼을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뽑아서 없애야 한다."... (39쪽)올 첫머리에 <부처와 테러리스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적지 않은 줄거리가 <사티쉬 쿠마르>에 나오는 '구루 스님'이 어린 사티쉬 쿠마르한테 들려준 좋은 옛이야기와 겹칩니다.
당신 스스로 종교에 어떤 문제를 느껴서 뛰쳐나왔다고 하면서, 당신이 어려서 배운 여러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다니, 무슨 일일까 생각하면서 거듭 읽습니다. 어쩌면, 당신 몸은 스님에서 벗어났지만, 스님으로 있는 동안 얻은 가르침 가운데 한 사람 삶에 한결같이 아름다이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는 어떤 굴레나 울타리에 매이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즐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냐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