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46%는 누구의 탓일까?

결국 주권자에게 책임이 돌아온다

등록 2008.04.10 18:51수정 2008.04.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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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였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권의 행태에 처절한 복수를 안긴 것이다. 여기저기서 낮은 투표율에 대하여 국민을 원망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정작 왜 국민들이 이렇게 투표를 하지 않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어떤 모임이라도 과반수는 표결에 참여해야 의결이 가능하다. 작은 모임을 하나 꾸려 나가는 데도 의결 정족수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총선의 투표율이 46%라면 민의를 적절히 반영한 선거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기권도 주권자의 의사표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선출된 자들의 대표성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46%가 투표해서 투표자 중 30%를 득표하고 당선된 사람은 실제로 유권자의 14%에도 못미치는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주권자가 자신이 가진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만 할 일도 아니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를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투표권이 법적 권리일 뿐 의무는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받을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뭐 잘했다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무엇이 이렇게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원인을 좀 살펴보자는 것이다.

 

첫째, 정치적 경제적으로 과거에 비하여 형편이 나아졌다. 극심한 독재로 국민의 자유가 심하게 제약받지 않게 되었다. 경제발전이 성과를 내면서 정치에 의하여 개개인의 경제활동이 눈에 보이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론 정치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지대하지만 과거에 비하여 그렇게 화급하게 느낄 이유는 많이 사라졌다. 정치하고 자신의 삶이 크게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선진국의 투표율이 비교적 낮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 지역구도 정치의 문제이다. 선거의 결과가 예측불허의 접전일 경우 보통은 투표율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는 이미 지역구도에 의하여 대부분의 판세가 결정되어 있다. 자신이 투표를 해서 구도가 좀처럼 바뀔 것같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반드시 투표를 할 유인이 느껴지지 않게 마련이다.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사람들, 호남에서 민주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 자신이 투표를 하나 마나 결과는 뻔한데 투표할 이유가 별로 없다.

 

셋째, 정당정치가 정착되지 못하였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니 각 당이 충성도 높은 당원이나 지지자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책의 선명성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정당이 확고히 자리잡았다면 각 당의 지지자들은 충성도가 높고 반드시 투표하려 노력한다. 정체성이 채 확립되기도 전에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반복하니 지지자들의 혼란이 있고, 충성도도 낮아지는 것이다. 정당은 없고, 붕당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는 오히려 정당정치의 걸림돌이다.

 

넷째, 저질 정치로 혐오감이 커진 탓이다. 정치인들의 주장은 전혀 일관성이 없다. 입장이 바귀면 바로 직전에 했던 주장을 반대로 뒤집는다. 자신이 한나라당의 본류라던 사람이 탈당해서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민주당에서 호령하던 사람이 금방 한나라당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는 차라리 코미디 같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며 발목을 잡더니, 여당이 돼니 금방 발목을 잡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국민을 협박한다. 이당저당 기웃거리고, 소신없이 왔다갔다한다. 돈으로 유권자를 매수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차라리 투표장에 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다.

 

다섯째,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실컷 권력을 누리다가 국민여론이 나쁘면 서로 발뺌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고 도망가기 바쁘다. 당의 지지율이 낮으면 당을 부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헷갈린다. 주권자가 내리는 엄중한 심판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회피하기에 여념이 없다. 결국 국민은 정치를 더욱 혐오하게 될 뿐이다.

 

여섯째, 하향식 정치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하향식 공천이 이루어졌다. 당헌당규가 정한 것과는 달리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공천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자신들만의 힘겨루기로 공천을 하고, 그런 공천을 무기로 줄세우고 패거리를 만든다. 결국 각당의 당원들조차 별로 투표할 생각이 없어지게 만든다. 사실 공천권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투표를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관심이 가는 정치인을 직접 고를 기회가 없으니 당연히 흔쾌히 지지할 생각도 없어지게 마련이다. 누가 투표하고 싶겠는가?

 

주권자가 자신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옳거나 칭찬받을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권리를 행사하느냐 포기하느냐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따라서 무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나 나머지는 대부분 정치인들의 잘못이다.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정체성이 불분명하며, 정책적 차별성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철새처럼 이당저당 옮겨 다니고, 일관성없이 이리저리 말을 바꾼다. 주권자의 비판에 직면하면 책임을 떠 넘기고 도망간다. 주권자가 참여하는 상향식 정치를 매우 싫어한다. 금품을 살포하고 뇌물을 받으며, 이권에 개입하여 돈을 챙긴다.

 

투표율이 낮다고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스스로의 행위를 돌아보기 바란다. 누가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부추겨서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만들었는가? 모두 정치인들의 저질스러운 행태에서 기인하는 일이다. 그렇게 질낮은 정치를 하면서 낮아진 투표율은 당선된 사람조차 대표성에 심각한 하자를 안고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낮은 투표율을 혹시 즐기고 있는 정치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들 얼굴에 먹칠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책으로 승부하는 정책정당, 지역구도를 허물려고 노력하는 전국정당, 주권자의 심판을 회피하지 않는 책임정치, 당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는 상향식 정당, 깨끗한 정치, 이당저당 기웃거리는 철새가 없는 정치를 한다면 누가 투표하지 않겠는가? 투표하지 않는 국민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 물론 좋은 정치를 위해서라도 주권자는 신성한 주권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선 안될 일이다. 오히려 표로 응징하고 심판해야 옳다.

 

잘못은 정치인들이 저지르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국민의 몫이다. 저질 정치인들도 결국 국민이 용인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정치가 혐오스러울스록 주권자는 반드시 투표해야 맞다. 정치인들은 국민이 묻지 않는 책임을 스스로 지지는 않는다. 나쁜 정치인들 때문에 낮아진 투표율 이지만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또 나쁜 정치인일 뿐이다. 주권자는 참 피곤하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4.10 18:5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사상최저 투표율 #지역구도 #저질정치 #철새정치 #책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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